리움 [1098931] · MS 2021 (수정됨) · 쪽지

2022-02-01 18:44:01
조회수 1,546

[칼럼] 내신 5점대 영상맨이 한의대 붙은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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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뻘글 아닌 글로 처음 인사드립니다ㅏ




아 먼저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혹 재수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설 연휴에는 그래도 좀 쉬시면 좋겠습니다! 쉬는 핑계로 이 글을 읽어도 좋고요!! 식사 하시고 소화하시면서 읽으셔도 좋습니다!



몇몇 분들이 제 수능 수기를 기다리고 계셨는데, 그분들께는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수능과는 다소 관계없을 수 있는, 오히려 (지금까지 느낀 바로는) 꽤 현실주의적인 오르비 정서랑은 좀 떨어져 있기도 한 낭만충 썰이니까요...해서 오늘 주제는 방송실에 상주하던 영상맨이 어떻게 재수를 결심했는지, 그때까지 그의 삶은 어땠는지... 뭐 이런 겁니다. 시작해보죠!

(미리 경고합니다. 오글거립니다.)

(과몰입해서 읽으면 재밌을겁니다!)








영상맨을 이제부터는 R군이라고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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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군은 중학교 때까지 공대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는 ‘잘나가는 대학의 공대생이 되겠다’라는 커다란 꿈을 안고 유명 자사고에 합격하게 됩니다.

자소서에 적어 낸 그의 꿈은 ‘스타트업 CEO’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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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입학 후 그는 ‘반별 영상 제작’이라는 첫 과제를 맞이하게 됩니다. 영상을 한 번도 제대로 찍어본 적도, 편집해본 적도 없는 그가 인생 처음으로 밤을 꼬박 새워 영상을 만들어갑니다. 처음 계획했던 바와는 완전히 달라진, 얼기설기 이어붙인 D급 영상을 완성한 그는 영상이 처음 틀어질 때 느껴지는 환호성에 약간의 울림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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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군은 이후 좋은 친구를 만났습니다.

R군은 좋은 선배를 만났습니다.

그는 친구에게 이끌려 그 선배가 있는 동아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는 처음으로 '인정받는다는 감각'을 느끼며 영상 제작에 빠져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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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중간고사, 그는 평균 5등급 후반이라는 쾌거(?)를 달성합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께 "성적 나쁘지 않아요. 잘하고 있어요."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 거짓말은 2학년 말 부모님 동반 진학상담 직전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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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그는 아직 확실하게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AP 미시경제, 정치와 법, 물리, AP 컴퓨터과학을 한 번에 수강하는 괴이한 시간표를 완성한 그는 서서히 공부에 힘을 빼기 시작했습니다. 2학년 성적은 6점대로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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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공부 외적으로 그의 학교생활은 나름 훌륭했습니다.

학교홍보 영상대회에서 인생 처음으로 1등을 해봅니다.

영상 외주를 뛰면서 처음으로 돈을 벌어봤습니다.

동아리장을 맡으면서 스스로의 리더십에 실망했지만,

축제 영상을 만들면서는 팀 작업의 묘미를 느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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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공연이 한창일 때 그는 방송부 카메라 옆 책상에서 영상 마무리 편집을 하고 있었고, 상영 5분을 남기고 학생회에 전달된 10분 남짓의 mp4 파일은 그에게 다시 한번 큰 울림을 주게 됩니다.


그는 축제 때의 느낌을 회고할 때면 이렇게 말합니다.



"상상해봐. 밴드 공연하는 애들은 연주하는 동안은 완전 몰입하잖아. 그러고 나서 박수를 받을 때 빡 감동이 오지? 나는 어떤 느낌이냐면, 영상이 틀어지는 10분 동안 계속 박수를 받는 느낌인 거야. 밴드 애들은 잠깐 동안 느낄 기분이, 나는 영상 틀어지는 내내 느껴진다고. 도저히 맨정신으로 볼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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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의 기숙사 방에는 조명 한 대와 반사판, 짐벌과 삼각대가 구석에 놓여 있었습니다. 한 선배가 크로마키 천도 그에 손에 쥐여주고 졸업하면서 그의 장비 컬렉션은 점점 화려해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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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군은 3학년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새로운 욕심을 가지게 됩니다. 2학년 말 사형 선고와 같이 느껴졌던 ‘수시 성적으로는 원하는 대학은 힘들 것’이라는 말은, 그에게 오기를 심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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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군은 2020년 한 해 동안 그가 기울인 노력에 대해 스스로 높게 평가합니다. 성적도 놀랄 정도로 좋아지고, 매 모의고사에서 나쁘지 않은 점수를 받습니다. 9월에 첫 수시 불합격을 맛보고 수능까지 남은 3달은 정말 열심히 정시 준비에 임했습니다. 하지만 잠시의 노력으로는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다는 천명이 내려졌는지, 그의 수능 성적은 그가 1년 내내 받은 그 어떤 시험 점수보다 낮았습니다. 정시로 이 정도는 가겠지, 하고 별생각 없이 지원한 수시도 전부 불합격이라는 쓰라린 결과로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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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R군은 대학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재수를 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어머니의 눈물이였습니다. 아들에게 느낀 배신감이 아닌, 그저 '아들의 노력을 아는 부모로서 느끼는 안타까움'이라고 하셨습니다. R군은 그 장면을 생생이 품에 넣고, 재수를 결심합니다. 남들보다 한술 더 떠서, "수능 만점 받겠다"는 선언과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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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이면 이 글의 다음 챕터는 재수 생활 일겁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3년간의 학교생활에 마침표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졸업 영상’ 한편을 만들고 싶어집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도는 나름의 가치 증명을 위한 발버둥이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나를 바라볼 때 나의 3년은 무가치한 것일 수 있겠다는 두려움, 그리고 당장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 틈을 뚫고 엄습하던 당시의 패배감이 그를 움직였습니다.


뻔한 졸업 영상, 예컨대 ‘이젠 안녕’을 틀고 사진을 넘기는 그런 고리타분한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작곡 기술은 없으니, 곡을 만들어줄 친구를 불렀습니다.

장비도 부족하니, 중학교 친구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빌립니다.

학교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동아리실 하나를 작업실로 리모델링합니다.

무엇보다 출연을 함께해줄 친구들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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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그의 19살 인생의 마무리이자 ‘다음 무대’의 서막인, 뮤비 한편이 탄생합니다.


그 영상은 R군에게 큰 의미로 남습니다.



자신의 3년에 작지 않은 자취가 남았다는 안도감

내가 필요로 할 때 흔쾌히 도와줄 친구들이 있다는 고마움

내가 존경하던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

누구보다도 졸업다운 마무리를 했다는 후련함

그리고 앞으로 놓인 1년이란 시간 동안 그를 움직이게 할 원동력


이런저런 것들을 품고 그는 재수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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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도 참 탈이 많았습니다. 뒤늦게 시작한 재수인지라 학원도 제때 등록하지 못해 소위 ‘집독재’를 했고, 6월이 되어서야 반수반에 들어갑니다. 재수 초반에는 모든 것이 새로워 점수가 쭉쭉 오를 것 같았지만, 꽤 오랜 기간 실력이 늘지 않는 것 같은 정체기를 보냈습니다. 계산 실수로 골머리를 앓은 적도 많았고, 제2 외국어를 너무나도 늦게 시작해 수능 전 2달은 거의 아랍어 단어만 외웠네요. 남들처럼 체계적이지 못해 n제와 기출분석의 균형도 깨졌고, 막판에는 학원 컨텐츠를 꾸역꾸역 소모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얘기들은 추후에 더 자세히, 나눠서 다루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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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러하여서, 이 친구는 올해 대학을 가게 되었답니다. 기껏 한의대를 붙어놓고는, “어짜피 나 한의사 안할건데? 그냥 좀 배고프지 뭐.”라며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웃긴 친구죠. 재수 기간 동안, 그리고 얼마 전까지도 꿈에 대해 약간의 내적 갈등을 겪던 이 친구는,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자신의 꿈에 대한 자신감을 찾은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궤적을 글로 정리해보자고 시작한 것인데, 약간 다듬어서 올리면 좋겠다 싶어 이렇게 던져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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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전개 방식이죠? 3인칭 시점으로 주절주절 떠들고 사실 자기 얘기였다는 둥... 숨겨서 무엇하리, 제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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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꿈을 모두 응원합니다. 꿈이 없는 이들도 응원합니다. 저는 삶을 무대에 비유하는 걸 참 좋아합니다. 지금 막 재수라는 무대에서 내려와 다음 무대로 나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목표하는 바가 있어 남들이 잘 가지 않는 무대에 막 뛰어드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입시 커뮤니티니까요...ㅋㅋ 여러분들이 어느 무대에 서 있든, 각자의 자리에서 일사불란하게 연기 하다 보면, 언젠가 박수 받으며 막을 내릴 시기가 오지 않을까... 하고 기원해 봅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제목을 바꿔야 하나 싶네요.


“약 3000자로 해명하는 한의대 안가는.eu”


이거로ㅋㅋ..

이게 더 어그로 끌렸으려나.




...좋아하는 노래 가사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부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동경했던 것들이 다 막연하긴 해도

정말로 그들처럼 될 수 있다 생각했고

닮는 단 거 조차 뭔지 몰라서 못 되었고

그 시절에 닮아갈 무언가에 목 메었던

나 움직여, 꿈 깨!


Khundi Panda - 킥아웃코드






-리움

삭재업입니다. 재밌으셨으면 좋아요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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