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이야기 25편 - 경험과 실패
전쟁사에서는 수많은 실패와 교훈이 있습니다. 특히 세계 1,2차 대전을 거치면서 기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군대는 과거보다 다양한 형태의 전투가 가능해졌습니다. 비행기의 등장으로 공수부대가 후방에 침투가 가능해졌고, 전차의 등장으로 과거 기병의 역할이 대체되었습니다.
특히 오늘 다룰 주제는 바로 '상륙전'입니다. 한국인에게는 인천상륙작전이라는 단어가 제일 익숙하고, 이외에도 유명한 상륙작전이 몇개 존재합니다 오늘 다룰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그렇고, 영국군이 대규모로 기획했던 갈리폴리 상륙작전도 있습니다.
이런 상륙작전은 과거 전쟁에서는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작전이었습니다. 참호전과 마찬가지로 기관총과 참호, 철조망 등 적의 진격을 막는 수단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해안가에서 적의 방어를 뚫고 대규모 병력을 상륙한다는 것은 이전의 상륙작전보다 더 큰 위험을 의미했습니다.
또한 적이 없더라 하더라도 대규모의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려면 큰 규모의 항구와 적절한 해안시설이 필요한데, 이런 상륙지를 고르는 일부터가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실제로 인천상륙작전 당시까지 유엔연합군을 어디에 상륙시킬지가 매우 심각한 논쟁거리였고, 마찬가지로 북한군 또한 도저히 상륙지를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상륙지 선정이 어려웠습니다.
누구에게도 친숙하지 않은 상륙작전은 수많은 인명피해와 시행착오 끝에 상당히 까다로운 종류의 작전이라는 점을 정치인과 장교들이 알게됩니다. 실패를 하고나서야 알 수 있었던 것이죠. 비슷하게 한국도 사스와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대규모 감염병에 대한 대처능력이 향상되었고, 그런 경험 덕에 더 나은 대처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경험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https://uk.ign.com/articles/2017/11/21/battlefield-1-turning-tides-dlc-release-date-announced
(세계 1차대전 당시 터키의 영토에 곧장 대규모 병력을 양륙시켜 터키의 수도로 진격, 점령하여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킨다는 영국군은 상륙작전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몸소 박살남으로써 증명해줍니다
https://gigajet.tistory.com/219 )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당시 유럽의 재해권을 움켜쥐고있던 영국은 전례없는 대규모 상륙작전을 기획합니다. 적의 해상전력이 약한 편이니까, 곧장 터키의 수도 근처에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수도를 점령하고 독일, 오스트리아, 오스만 제국(터키) 중 터키를 바로 전쟁에서 제거한다는 대담한 계획이었습니다.
이런 대담한 작전을 위해 영국은 당시 영연방이었던 호주, 뉴질랜드 군인들까지 대규모로 동원해 역사에 길이남을 수준의 상륙전을 준비합니다. 당시 이 작전을 입안했던 주요 책임자는 우리가 영국 수상으로 잘 알고있는 처칠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포를 하자면 세계 2차 대전 영국의 총리를 지낸 이 처칠의 최대의 경력에서 오점 중 하나로 이 사건이 기록됩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해군 장관을 맡고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 해군은 이러한 대담한 계획을 세웠으나, 문제는 상륙을 담당하는 영국 육군이 큰 반대를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칠의 이미지로 알다시피 해군 쪽에서 이 작전을 밀어붙입니다.
이렇게 시작부터 육군과 해군의 손발이 안맞았지만, 워낙 막강한 세력을 자랑하던 해군이 단독으로 밀어붙입니다. 당시 영국 해군은 당연히 적보다 훨씬 세력이 튼튼했으니까, 해상에서 적을 격파하고 전함이 지상에 포격을 가하고 육군이 상륙하면 손쉽게 적을 제압하리라는 상상을 했습니다.
무려 50만이 넘는 인원이 갈리폴리를 포격하고 점령하기 위해 동원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갈리폴리에 배치된 해안포를 제압하기 위해 대함대가 출동하여 막상 붙어보니 쉽게 해안포를 제압하기는 커녕 오스만 제국군의 해군이 심어놓은 기뢰에 아군 전함이 격침당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결국 해군 함포사격을 통해 적을 완전히 무력화시키지 못하고 병력이 해변에 상륙하는데, 문제는 적절한 상륙전을 수행할 이렇다할 장비나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만약 해군 함포사격을 통해 적을 무력화한 직후 육군이 빠르게 상륙하기 위해서는 상륙군에 연락장교가 파견되어 함대와 긴밀한 팀워크를 펼쳐야합니다. 그러나 대규모 상륙전이 처음인 입장에서는 이러한 세세한 부분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만약 함포 사격이 너무 늦게 끝난다면 상륙한 아군이 포격당할 위험이 있고, 반대로 함포 사격이 일찍 끝났는데 상륙군이 너무 늦게 움직이면 방어자 입장에서는 상륙을 저지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집니다. 갈리폴리 상륙전은 후자의 경우 공격자가 얼마나 심각하게 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https://www.britannica.com/event/Gallipoli-Campaign
(고지를 향해 돌격하는 영국, 뉴질랜드, 호주 연합군. 워낙 해군력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났기에 함대의 함포사격만으로도 쉽게 적을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별다른 준비 없이 가파른 언덕으로 이루어진 갈리폴리에 상륙합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9834&cid=59016&categoryId=59023 )
상륙군이 진격을 시작하자 참호를 파고 숨어있던 오스만 제국군은 기관총과 포탄을 쏟아붓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완강한 저항에 상륙지에 묶인 연합군은, 더이상 진격하지도 또 후퇴하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버립니다. 곧 상륙군 장교들은 이미 상륙작전이 실패한 것을 깨달았으나 후방의 사령부와 연락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사령부는 단순히 병력을 많이 쏟아붓는 것만으로 해안 방어시설을 돌파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이런 오판 속에서 대규모의 병력이 의미없이 계속 투입됩니다. 이런 단순한 생각은 아주 손쉽게 방어측의 기관총에 막혀버립니다. 문제는 이런 지옥도가 무려 8개월 동안이나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방어를 해야하는 터키군 입장에서도 영국군은 강력한 존재였고 25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런 무모한 작전에 지속적으로 병력을 의미없이 투입한 영국 연합군도 4만 6천명의 전사자를 포함 무려 25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며 작전은 대실패로 끝납니다. 상륙지에 아무것도 못하고 발이 묶인 병력을 후퇴시키는 데에는 운좋게도 성공적이었지만, 피해가 적은 후퇴를 성공으로 평가할 정도로 이 전투는 실패한 전투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상륙작전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지원해주는 아군과의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공조가 필요했었지만, 아직 이를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시대입니다.
비슷하게 이후 태평양 전쟁에서도 곳곳에서 대규모 상륙작전이 벌어집니다. 주로 일본군이 점령하고 방어하는 곳에 대규모의 미군 병력이 상륙하는 작전이 발생했는데, 초창기 미군은 이런 상륙작전에서 지속적인 실패와 어려움을 겪습니다. 몇번의 걸친 경험 후에야 보병을 안전하게 수송하는 차량이 개발되는 등의 해결방안이 등장했습니다.
아무리 막강한 미군일지라도 적이 이미 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는 곳에 머리를 들이밀고 상륙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웠는데, 전쟁 말기 압도적인 해군력으로 일본군이 점령한 섬을 상륙하는 데에 수많은 미군이 희생당합니다.
압도적인 우세를 바탕으로 상륙작전을 시행함에도 아군 장병이 너무 많이 피해를 입자 미국은 슬슬 조급해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일본이 본토결전을 부르짖으며 매우 격렬한 저항을 예고하자, 일본 본토에 직접 상륙하여 아예 일본이라는 나라를 지구에서 지워버릴 생각을 하던 미국의 고민은 깊어집니다. 결국 상륙전보다는 핵폭탄을 선택할 정도로 상륙전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국가에게 부담이 컸습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okgorao&logNo=221476441204&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영화 '라이언일병구하기'에서도 노르망디 해변에 미군이 상륙하자마자 상륙선에서 내리기도 전에 독일군 기관총탄이 들이닥치며 전멸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매우 사실적으로 당시 끔찍했던 상륙전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바람에 영화를 관람하던 참전용사들이 PTSD를 호소했을 정도로 상륙작전은 위험하고 힘듭니다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159&num=38887 )
이렇게 어려운 상륙작전도 결국 실패와 경험을 반복한 후에야 상륙하는 병력을 위한 적절한 지원화기, 안전하고 빠르게 수송할 상륙선, 사전 함포 및 폭격으로 적군 무력화, 상륙작전 직접 기만전략을 이용한 적군 약화 등의 방법이 개발됩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학문에 대한 이해도나, 아니면 까다로운 문제에 대한 해법은 오로지 직접적인 경험과 실패를 통해서만 학습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문제에 당면하기 전에 이러쿵저러쿵 이론적으로 고민해도 정작 실제로 부딪히면 예상을 못한 문제에 부딪힙니다.
상륙전 외에도 전쟁사에서 수많은 딜레마와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사 발전 과정 중 그러한 문제를 겪은 군대가 비로소 적절한 해법을 개발하고 대처할 수 있었죠. 이처럼 경험과 실패를 겪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실감나게 학습을 가능하게 도와줍니다.
전쟁사 시리즈
https://orbi.kr/00020060720 - 1편 압박과 효율
https://orbi.kr/00020306143 - 2편 유추와 추론
https://orbi.kr/00020849914 - 번외편 훈련과 숙련도
https://orbi.kr/00021308888 - 3편 새로움과 적응
https://orbi.kr/00021468232 - 4편 선택과 집중
https://orbi.kr/00021679447 - 번외편 외교전
https://orbi.kr/00021846957 - 5편 공감과 상상
https://orbi.kr/00022929626 - 6편 정보전
https://orbi.kr/00023174255 - 7편 실수와 인지오류
https://orbi.kr/00023283922 - 번외편 발상의 전환
https://orbi.kr/00023553493 - 8편 준비와 위기대응
https://orbi.kr/00023840910 - 번외편 비전투병과
https://orbi.kr/00024082234 - 9편 예상과 예측
https://orbi.kr/00024160983 - 10편 신뢰성
https://orbi.kr/00024418374 - 번외편 보안
https://orbi.kr/00024715925 - 11편 기출분석
https://orbi.kr/00025035755 - 12편 파일럿 교육 양성
https://orbi.kr/00025121266 - 13편 인적자원과 교육
https://orbi.kr/00025579054- 14편 설계사상
https://orbi.kr/00026239605 - 15편 독소전쟁
https://orbi.kr/00026862509 - 16편 목적과 효율
https://orbi.kr/00027274206 - 17편 현대전의 발전 양상
https://orbi.kr/00027336409 - 번외편 항공모함 시대의 도래
https://orbi.kr/00027382337 - 18편 러일전쟁
https://orbi.kr/00027503697 - 번외편 기만과 속임수
https://orbi.kr/00027559260 - 번외편 MHRD
https://orbi.kr/00027622118 - 번외편 미래의 전쟁
https://orbi.kr/00027786178 - 19편 의료전선
https://orbi.kr/00028148901 - 20편 중립과 군사력
https://orbi.kr/00028250151 - 21편 장전과 방아쇠
https://orbi.kr/00028339193 - 번외편 음식
https://orbi.kr/00028397136 - 번외편 잠수함
https://orbi.kr/00028594440 - 22편 단순함과 효율
https://orbi.kr/00028616772 - 23편 준비
https://orbi.kr/00028633462 - 번외편 기업가정신
https://orbi.kr/00028751436 - 번외편 단수와 보급
https://orbi.kr/00028918449 - 24편 자율성과 민주주의
알고리즘 학습법(4편예정)
https://orbi.kr/00019632421 - 1편 점검하기
학습이란 무엇인가(11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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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orbi.kr/00019535790 -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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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orbi.kr/00022556800 - 번외편 인치와 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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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이야기
https://orbi.kr/00024250945 - 1편 일관성과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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