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이야기 번외편 - 외교전(장문주의)
이번 편은 제2차 북미회담을 기념으로 준비해보았습니다. 다 써보고나니 5천자를 넘네요.... 후덜덜....
제가 지금부터 단어들을 나열해보겠습니다. 아주 쉬운 퀴즈입니다.
정보전, 첩보전, 총력전, 외교전, 전자전, 화학전, 항공전, 전격전, 총력전, 심리전.....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모두 ‘싸움 전’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전쟁과 전투라는 것은 병기와 인명이 투입되어 물리적으로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맞붙는 광경이 상상됩니다. 그러나 저는 전쟁사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전쟁이라는 의미를 이렇게 단편적이고 축소된 의미로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수능 국어에서도 신채호 선생의 ‘아’에 관한 지문이 나온적이 있습니다. 신채호 선생은 생존이라는 것을 투쟁이라고 표현했는데, 저는 이 ‘투쟁’이라는 단어를 ‘전쟁’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단순히 일제강점기때 일본 헌병들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저는 신채호 선생이 말한 투쟁은 매우 복합적인 요소들의 결합으로 봅니다. 이런 시각에서 한번 ‘외교전’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아까 전 여러 단어를 나열하면서, ‘싸움 전’자가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다고 했습니다. 외교전 또한 하나의 ‘전쟁’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 국의 외교관들은 치열하게 싸움과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유리한 고지를 점거하고, 최대한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치열한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수능 국어에서도 ‘윈셋’ 지문에서 이런 것을 한번 살짝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한국이라는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 수많은 국정원 요원들이 활동 중이며, 정치인과 지도부는 매일 밤 국가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하며 잠에 들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끊임없는 상대방과, 혹은 자기 자신과의 투쟁 또는 상호작용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특힌 한국같이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형국에서 요충지를 점거한 나라는 외교적 요소가 매우 중요합니다.
(국가 정보원 건물에 있는 별이 새겨진 대리석 판. 한국을 위해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희생한 요원들을 기리는 의미가 있다.
https://news.joins.com/article/5598027)
2018년은 한국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해였습니다. 요지부동이던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직접 자신의 입에 ‘비핵화’라는 말을 하는가 하면, 한반도의 정상들이 각국을 돌아다니며 치열한 외교적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단순히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각국의 외교부와 정상들은 속마음에 여러 가지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참모와 정상들의 손짓과 몸짓, 말 하나하나는 매우 날카롭고 예리해서 살기까지 느껴집니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러 북한에 직접 미국의 정보부장 폼페이오가 방문했을 때, 서로 무서운 말을 태연히 주고받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여전히 CIA가 나를 암살하려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사과를 요구했고, 이에 질세라 폼페이오 정보부장은 “지금도 우리는 당신을 암살하려고 하고 있다”라고 맞받아칩니다. 이런 자리에서 나오는 말 하나하나는 태산같이 무겁고 엄중하여,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좁게는 개인이 넓게는 각국의 운명이 큰 영향을 받습니다.(https://news.joins.com/article/22732065)
2018년 북한의 비핵화가 큰 지지와 기대 속에 진전되자,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동아시아에 유력한 강대국들은 매우 바빠졌습니다. 서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의중을 파악하여, 최대한 자신의 우군을 확보하고 이익을 챙기려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런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한국과 일본은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한번 치루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동시에 미국과 동맹인 관계이면서도, 과거사로 인해 서로 껄끄러운 사이입니다. 그런데 과거부터 일본은 국력의 측면에서나, 아니면 국방력 측면에서 한국보다 우위를 점거하는 모양새입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미국은 한국보다는 일본 말을 들어주고 신경써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연히 한쪽이 이익을 보면 다른 한쪽은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런 판도가 계속된다면 한국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일본으로 넘어갈 확률이 높을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비핵화가 촉발되면서, 이런 판도가 뒤집어져버립니다. 남한 정부는 비핵화를 위한 대화 국면이 시작되기 전에는 미국 정부와 협력하여 대단히 보수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습니다. 일본 또한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를 지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분위기가 대화 국면으로 급작스럽게 전환되자, 남한 정부는 이에 맞추어 유화적인 태도로 접근하게 됩니다. 몇 차례나 고위 관료들이 북한을 직접 방문하여 상호작용을 하였고, 이 덕에 남북의 관계는 빠르게 개선되며 동시에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게 됩니다.
(남북정상회담은 하나의 결과이지만, 이것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 투쟁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복합적으로 얽힌 조건들이 맞아 떨어지면서 역사적인 사건이 성립하게된다)
반면 이런 변칙적인 상황에서 일본 외교는 경직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대화 분위기 속에서도 지속적인 압박을 주장하자, 이에 대해 북한이 비협조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중입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유화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북한과 대화나 회담을 전혀 하지 못합니다. 결국 이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수준으로 전락합니다. 중요한 일에 끼지 못하고 왕따가 되어버리는, 이른바 ‘패싱’은 외교전의 패배를 의미합니다. 현재 일본은 ‘재팬 패싱’이라는 굴욕적인 단어를 들으며 망신을 당하고 있습니다.
다급해진 일본은 남한 정부에 대한 러브콜과 저자세를 시전합니다. 남한 정부가 일본이 요청한 대로 일본인 납치 문제를 북한에 대신 제기해주자, 이에 대해 큰 감사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 측에서는 취임 1주년을 축하하는 뜻에서 한국말이 적힌 딸기 케이크를 전대하기도 합니다. 만약 남한이 조금이라도 불쾌하다는 이유로 당장 일본에게 협조해주지 않는다면, 일본은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 남한은 일본에게 완벽한 ‘갑’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인구나 국력, 국방력으로 보았을 때는 일본이 우위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단순히 한국과 국가끼리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고전적인 의미의 전쟁’에서는 승리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한반도에서 벌어진 ‘외교전’에서는 확실한 참패를 당합니다. 남한 정부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와 매우 긴밀한 사이까지 발전한 반면, 일본 정부는, 미국과 북한에 대해서 의존적인 관계로 전락하게 됩니다.
일본이 전투기와 함선이 부족해서 외교전에서 패배했습니까? 아닙니다. 일본에게는 한반도 외교전에 있어서 외교적 역량이 남한보다 확실히 부족했고, 또 적절한 태도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외교라는 것은 단순히 우호적인 대화뿐만 아니라 각국의 지정학적 상황, 서로에 대한 경제적 연관성이나 국방력 차이, 여론, 혹은 지도자의 인간적인 취향이나 선택 등 복합적인 요소로 결정납니다. 수능 국어의 ‘윈셋’지문도 이런 복합적인 요소들을 살짝 설명해 준 적이 있었지요.
제가 이 칼럼을 쓴 날짜가 2018년 12월 28일 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아직 한일관계가 그럭저럭 잘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북한 문제에 관해서 남한이 완벽한 갑이었기에, 함부로 일본이 남한의 심기를 건드리는 순간 마지막 동아줄을 스스로 잘라버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2019년 1월 초~중에 수차례에 걸쳐 발생한 일본의 ‘초계기 근접비행 도발사건’으로 한일관계는 파탄이 나버립니다. 수많은 한국 국민들이 분노했고, 대한민국 국방부 또한 아주 강력한 불쾌감을 표시했습니다. 이제 일본은 북한문제에 대해서 남한 정부의 협조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며, 유일하게 남아있는 카드라고는 미국에게 최대한 부탁하고 구걸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제가 며칠 전 뉴스기사를 찾아보았습니다. 일본 아베의 외교가 궁지에 몰려, ‘오면초가’에 처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외교적으로 고립될 위기에 처한 일본. 계속된 실책으로 외교전에서 참패하며 벌어진 일이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190225004305)
일본은 북한과의 대화를 희망하지만 완고하게 거부당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는 쿠릴열도 영토문제와 군사적 긴장으로 반목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일본의 해군력 증강에 강한 위기감을 느끼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경제적으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위안부 문제, 독도 영토문제, 그리고 얼마 전의 초계기 사건으로 불신이 극에 달했습니다.
이처럼 외교전이라는 전쟁은 대단히 고차원적이면서도, 복합적인 요소들이 조합된 결과물입니다. 일본의 아베 학생은 철저한 준비와 각각의 상황에 대해 효과적인 대처법을 구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외교전 참패’라는 성적통지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수능 국어 또한 단순히 우리에게 언어적인 이해력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해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고력을 요구하며, 수능 국어 점수는 복합적인 능력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납니다. 마치 외교처럼 수능 국어를 제대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준비물이 필요합니다. 필자 또한 수능 국어를 계속 연구하고 훈련하면서, 이런 부분을 자주 실감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수능 국어는 뇌과학적 과목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사고력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훈련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처 방법을 설정해두고, 적재적소에 사용하고 응용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내가 국어에서 이 문제를 맞딱뜨렸는데, 이것이 나에게 뭘 요구하는가? 어떤 상황인가? 대등병렬인가? 현상과 원리인가? 원인과 결과인가? 목적과 방식인가? 수능 국어는 우리에게 다양한 요소를 질문하며, 각 요소에 알맞게 대응하는 사고를 해야합니다. 절대로 모국어 시험이라고 해서 단순한 읽고 쓰기를 묻지 않습니다. 외교가 단순무식하게 몸집과 근력으로 결정되지 않는 것처럼, 수능 국어도 단순히 빠르게 읽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수험생들과 선생님들은 수능 국어를 단순히 빠르게 읽는 수준에 중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앞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제가 조금씩 떡밥을 흘린, 수능 국어의 복합적인 요소를 하나하나 분해하고, 훈련하는 시간을 갖을 것입니다.
전쟁사 시리즈(약 11편 예정)
https://orbi.kr/00020060720 - 1편 압박과 효율
https://orbi.kr/00020306143 - 2편 유추와 추론
https://orbi.kr/00020849914 - 번외편 훈련과 숙련도
https://orbi.kr/00021308888 - 3편 새로움과 적응
https://orbi.kr/00021468232 - 4편 선택과 집중
알고리즘 학습법(4편예정)
https://orbi.kr/00019632421 - 1편 점검하기
학습이란 무엇인가(11편 예정)
https://orbi.kr/00019535671 - 1편
https://orbi.kr/00019535752 - 2편
https://orbi.kr/00019535790 -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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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본은 갑자기 왜 초계기를 띄워서 한국을 도발했나요? 어떤 사람은 정권 유지를 위해 반한 유도가 필요하다고 하던데...
아무튼 좋은 게시글 잘 읽었습니다.
예전부터 위정자들이 써온 방식입니다. 외부의 적에게 눈을 돌려 내부를 다지려는 의도입니다. 실제로 초계기 사건을 통해 아베 자신의 실패와 책임을 묻어버리고 지지율을 올리는데 성공했습니다.
일본의 외교적 실책은 스스로 이런 부정적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보수정권의 연장을 위한 의도된 쇼라고 보는 것이 맞겠죠. 일본이야 내실이 근본적으로 단단한 국가이니 일단 정권만 연장된다면 외교는 그 다음에 풀겠다는 전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외교천재 문재인 .. ㅋㅋㅋ
처음 읽는데 너무 잘읽었어요! 외교전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이해한 기분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