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ㅅㅋㅌ [1056455] · MS 2021 (수정됨) · 쪽지

2024-11-22 03:4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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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주의) 100억을 준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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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수 가채점 끝난 저녁날,

받아든 가채점 결과는 언미영물지 13323.

목표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었고 당연히

부모님한테 재수하겠다고 선언했음.


그 다음 날이었나? 학교에 출석했을 때의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친구들 말로는 내가 그때 시발점 기하를 정신없이 듣고 있었다고 함.

(다들 스마트폰 보고 노느라 정신이 없는데 혼자 태블릿 꺼내고 인강 듣길래 미친 놈인줄 알았다고 함…)


그렇게 어영부영 논술을 보랴 학교 가랴 시간만 보내다가

처음 제대로 재수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날이 2023년 11월 20일이었음.


그날부로 나는 수능 선택과목을 기하로 바꾸기로 결정하면서

논술 준비+심심풀이용으로 보던 기하 시발점을

수능 준비용으로 목표를 바꿔 공부하기 시작했고,

맨 앞 장에 재수를 시작한 날짜를 적었음.

다시는 이날의 기분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그 뒤로 일 년간 사람이 아닌 것처럼 살았음.



2023년 11월 20일부터 2024년 11월 14일 수능날까지

단 하루도 책을 손에서 놓은 날이 없었음.

하루종일 공부한 건 아니어도, 적어도 항상 책을 보려고 노력했음.

놀러갈 때나 연말 가족여행을 갈 때엔 시발점 기하/수분감 기하를 끼고 있었고,

애들이 술 마시자고 부를 때, 이세돌 팝업스토어 갈 때는 출발 직전까지 학원에서 공부했음.


그리고 나선 러셀 대치 우선선발반에 1월 2일에 연고대반으로 입소해서

11월 11일 hs 2반으로 퇴소할 때 까지

졸업식, 6평, 9평, 애들 만나서 술 마신 다음날

이렇게 딱 4일 빼고 매일 학원에 있었음.


학원 다닌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미쳤지 싶었는데,

월화수목금토일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6-7시에 일어나서 대치동으로 향했음.

부모님이 바쁘셔서 차로 데려다주시는 건 꿈도 못 꿨고,

1시간 동안 전철을 두 번씩 갈아타면서 대치동으로 가면 딱 8시에 도착해서 바로 공부를 시작,

10시에서 11시까지 공부하고 나면 또 다시 1시간동안 전철을 타고 집에 가서 바로 자야 했음.

왜냐고? 안 잤다간 내일 학원을 못 가기 때문에.


나는 워낙에 자유로운 성향의 사람인데,
이렇게 딱 일주일을 지나고 나니까 정신적, 육체적으로 슬슬 데미지가 느껴지기 시작함.

그래도 버텼음. 일부러 더 안 힘들다고 말하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세뇌하려고 발악했고

어느 순간부터 아무런 생각이 안 들기 시작했음.


6평이 끝나고서는 지하철에서 낭비되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생각도 들어서

지하철에서는 못 들은 복습영상 강의를 듣거나,

V단어, 토르 2000같은 가벼운 강의를 들었음.

그마저도 없다면 n제나 모의고사 스크랩 문항을 계속해서 돌려보고 다시풀기를 반복했음.

어쩔때는 신비해 수학 1이나 이해원 n제를 지하철에서 풀다가 사람들한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고.


(이 사진에서 나온 모든 책이 내 일 년의 공부량이고 앞에 있는 박스 세 개는 전부 실모임.)


그렇게 나는 만 일 년을 살았고

가채점 결과 언기영물지 원점수 98 92 90 40 45로 올해 수능을 마무리하게 되었음.

작년에 날 가로막았던 3등급대 과목들이 모두 1등급이 된 것도,

물리가 3이 뜬게 뼈아프지만 다른 과목으로 어느 정도 메꿔져서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은 것도 정말정말 다행이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함.



주변에서는 가끔씩 물리가 아쉽지 않냐면서, 혹시 재수할 생각은 없냐고 물어보기도 함.

근데 난 절대로 안 할 거임.

더 이상의 노력은 할 수도 없고 할 여력도 의지도 남아있지 않음.

만약에 누가 100억을 줄 테니 2023년 11월 20일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차라리 고속도로에 뛰어들어버릴거임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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