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과 위악 [728914] · MS 2017 · 쪽지

2024-10-23 0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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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 신곡 ‘ATP’를 들으면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 -어느 꼰대의 상습적 불안함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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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 신곡 ‘ATP’를 들으면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 

-어느 꼰대의 상습적 불안함에 대해.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24년 10월 18일 선보인 ‘APT’ 노래가 출시 직후부터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네요. 


https://youtu.be/ekr2nIex040?si=WC1TLqr2yhe8ANml


유튜브 조회 수가 출시 닷새째인 10월 23일 오전 8시 40분(이 글을 쓰는 시점) 현재 9500만 회가 넘습니다. 1억 뷰 조회는 이날 오전 중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정말로 대단합니다. 

 

피처링에 참여한 이는, 2014년 11월에 발매돼 공전의 히트를 친 마크 론존의 ‘uptown funk’에서도 피처링에 참여했던 브루노 마스입니다. (uptown funk를 브루노 마스가 ‘부른’ 노래로 알고 계신 분이 많을 겁니다. 기실 이 노래는 마크 론존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을 브루노 마스가 불렀습니다. 주객전도의 대표적 예이지요.)


이 노래 영상을 유튜브로 보면서 ‘K pop이 한국 문화의 진정한 전도사이자 흥행사’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마음 한 편에서는 알 수 없는 불안함이랄까 안타까움 같은 게 밀려왔습니다. 


우선, 노래 시작은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로 시작하는데, 어디선가 많이 듣던 음정과 가락이죠? 


그렇습니다, ‘369 게임’을 시작할 때 부르는 노래입니다. (369게임은 숫자를 순서대로 부르되, 숫자에 3과 6, 그리고 9가 들어가면 박수를 쳐야 하는 게임입니다. 예를 들어 13에서는 ”십삼”을 외치는 대신 박수를 쳐야 하는데, 이때 십삼을 외치면 벌칙을 받습니다.)


90년대 후반인지 00년대 초반인지는 모르지만, 그 언저리에 시작됐던 369게임을 시작할 때 부르던 노래가 이제 세계적 가수의 노래에도 등장해 세계인이 알게 된 겁니다.


둘째, ’아파트‘ 발음을 영어식으로 “아파알트’가 아니라 ‘아파트’로 정확히 분절해서 발음합니다. 한국식 영어이지요.


셋째, 영상 중간을 보시면 부르노 마스가 태극기를 흔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국인이라면, 태극기를 보면서 대부분 뭉클한 감정을 느끼지 않나요? 세계적 가수가 뮤직 비디오를 찍으면서 태극기를 흔드는 영상이라니...


제가 대학을 다니고 졸업했던 80년대, 연예인은 ‘딴따라’라고 비칭했습니다. 제가 다닌 대학에서 언론사 진출을 꿈꾸던 이들은 PD보다는 기자를 꿈꾸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요. ”딴따라가 되고 싶다“며 방송사 드라마 PD를 꿈꾼다고 제가 이야기하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지요. 하긴, 당시 제가 다닌 대학에서는 ‘신문학과’는 있어도 ‘신문방송학과’는 없었습니다.


40년이 흐른 지금, 한국 전파의 1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K pop 등 한국 대중문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국이나 유럽 사람을 만나면 ‘두 유 노 김치’ ‘두 유 노 코리아’라고 물어야만 했던 시절을 지나, 이제 술자리에서 불렀던 369게임 리듬을 세계인이 자연스레 듣고 따라 하게 된 겁니다.


문학인들에게는 대단히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저는 한강 작가 님이 노벨문학상을 타게 된 것도, 00년대 이후 세계적인 명성을 구가하는 한국 대중문화의 힘이 반영된 것이라고 봅니다. 


정말로 자랑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


추신(한데 이게 본론)


그럼에도 스스로 꼰대임을 인정하는 이로서 한소리 하면... 


저는 한 나라의 진정한 힘은 물리학과 수학,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된 공학의 힘에서 나온다고 여전히 생각합니다. 15세기 이후 동양이 서양에 밀린 것도 자연과학적 탐구 정신의 결여 때문으로 보니까요.


삼성전자의 최근 안 좋은 흐름도 ‘지난 20여 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수학과 물리학 분야 등에 인재가 가지 않았기(혹은 너무 적게 갔기) 때문’으로 봅니다. 


문화는 꽃이라는 생각을 때로 합니다. 전성기에 피는, 그럼에도 자칫 전성기의 마지막임을 알리는 존재. 


그리스가 사실상 망한 지 250년쯤 지난 시점에서, 시저는 로마에서 여전히 문화 분야 등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그리스인들을 보면서 그랬다지요?


”당신들, 조상 잘 만나 먹고 사는 사람들 아니오?“(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중)


1980년대~90년대 초반까지 일본의 기세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일본의 욱일승천기가 떠오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등에 ‘US’라는 글자가 적힌 미국인(=엉클 샘)이 욱일승천기가 떠오르는 것을 막으려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 표지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전자회사 소니의 워크맨이 전 세계를 휩쓸었고, 결국 소니는 콜롬비아영화사나 거대 음반사인 CBS를 사들이며 ‘전자 패권’을 넘어 ‘문화 패권’을 꿈꾸었습니다. 


급기야, 도쿄도지사를 지낸 이시하라 신타로가 1989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을 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패전으로 인해 만든 평화헌법에 ‘짓눌린’ 일본인의 심정과 자신감을 대변한 책이라는 평가를 당시 받았지요. 


그러던 일본이 그 직후부터 잃어버린 20년(저는 10년은 아니라고 봅니다. 일본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만 봐도요.)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잃어버린 시절’ 동안 일본은 노벨물리학상 등을 배출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가요? 한국 대중문화의 상한가를 빼면 암울한 소식이 너무 많지 않나요? 


20대 등 젊은 분들은 ‘국장’(우리 주식시장을 부르는 용어)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죄다 미 증시에 투자합니다. 


20대 A.I. 등 공학 분야의 에이스급들은 대부분 미국으로 갈 생각을 한다더군요. 달러 보유에 힘을 쏟으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의 힘이 ‘peaking Korea’의 모습이 아니기를 간절히 빕니다. 한국 대중문화의 힘이 자연과학과 공학, 더 구체적으로는 수학과 물리학, 그리고 전자공학 등에서도 발현되기를 빕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인부터’가 아니라, 저를 포함해서 ‘표를 통해 대의 정치에 참여하는 국민부터’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치인은 궁극적으로는 꼭두각시이니까. 국민이 자연과학과 공학에 관심이 없으니, 정치인도 자연과학과 공학에 대해 이야기를 않는 것이니까. 저를 포함한 국민 대다수가 ‘대한민국 발전에 대한 전략’을 등한시하니, 정치인도 그에 대해 신경을 덜 쓰는 것이겠지요.


여러분들은 ‘극최상위 0.1% 중 수학과 물리학에 뛰어들 인재에게 국가가 많은 예산을 투자하는 것’에 찬성하십니까? 평등과 공정함에 위배된다고, 혹 반대하시지는 않나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극최상위가 수학과나 물리학과에 가려 할까요? 돈 잘 버는 의대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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