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코프스키 [1332076] · MS 2024 (수정됨) · 쪽지

2024-10-11 20:3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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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독서] 언젠가는 알아야 할, 플라톤 미학

게시글 주소: https://mclass.orbi.kr/00069449380

<얻어갈 개념어들>

칼론(καλόν), 적합한 것(to prepon), 이데아(Form)

이데아로서의 미(Form of Beauty), 철학적 계몽과 예술(Philosophical Enlightenment and Art), 에로틱한 욕망(Erotic Desire)

예술의 윤리적 책임(Ethical Responsibility of Art), 교육에서의 역할 모델(Role Models in Education)

모방의 기술(technê), 정직한 유사(eikasia)와 환영적인 이미지(phantasma), 시적 모방의 주술적 효과

신적 영감(Divine Inspiration), 모방(Mimesis), 지식 없이 창작(Ignorant Creation)

이데아(Forms)의 아름다움, 신적 광기(μανία)



안녕하세요 독서칼럼에 진심인 타르코프스키입니다.

오늘은 플라톤의 미학, 예술철학을 바탕으로 지문을 제작해 보았습니다.

이제 서론 읽을 시간도 없습니다.


핸드폰 켠 김에, 미메시스, 이데아, 에로틱한 욕망 등에 관한 다양한 철학적 개념을 분석한 아래 지문을 읽어보세요.



(좋아요 누르고 시험운 받아가세요!)


출처: https://plato.stanford.edu/entries/plato-aesthetics/


참조 및 재구성.



(연습문제 1)

플라톤은 미(美)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며 그리스어 형용사 '칼론(καλόν)'이 영어의 '아름다운(beautiful)'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음을 경고한다. '칼론'은 얼굴이나 몸, 조각상, 숟가락, 나무, 풀밭 등에 적용되며, 이러한 경우에 '아름다운'으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플라톤은 예술 작품이나 자연 경관보다 얼굴이나 몸에 '칼론'을 더 자주 사용한다. 이는 '칼론'이 현대의 '아름다움'보다 더 좁은 범위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칼론'은 윤리적 칭찬의 의미로 사용되어 '선(善, ἀγαθόν)'과 동일하지 않지만, 선함을 특별히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칼로스 카가토스(καλός κἀγαθός)'는 '아름답고 선한'이 아니라 '고귀하고 훌륭한'을 의미하며, 이는 완전히 윤리적인 용어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덕을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은 현대인에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칼론'과 '아름다움'을 동의어로 간주하려 하지만, '칼론'의 명사형인 '칼로스'는 신체적 매력을 연상시키며, 플라톤은 그러한 매력이 불러일으키는 욕망에 대해 경계한다. 특히 그의 대화편인 『대 히피아스(Hippias Major)』에서는 '칼론'의 본질을 탐구하며,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이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히피아스에게 미의 일반적 본성을 정의하도록 요구하지만, 히피아스는 구체적인 예시에 머무르며 본질적 정의를 제공하지 못한다. 소크라테스는 직접 세 가지 정의를 시도하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며, 대화는 결론 없이 끝난다. 이러한 탐구 과정에서 미를 '적합한 것(to prepon)'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는 18세기 철학자들이 논의한 미와 선의 관계와 유사하다. 그러나 플라톤은 미를 선이나 유용성에 종속시키지 않으며, 미는 이데아(Form)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미가 다른 이데아들과 마찬가지로 변증법적 탐구를 통해 발견되지만, 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도 독립적인 실재임을 강조한다. 플라톤의 미는 가시적이면서도 지성적인 독특한 존재로서, 그의 형이상학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틀린 선택지>
1. 플라톤은 '칼론'을 현대의 '아름다움'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사용하며, 이는 예술 작품과 자연 경관에 주로 적용된다.
2. 『대 히피아스』에서 히피아스는 미의 본질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제시하여 소크라테스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3. 플라톤은 미를 선과 유용성에 종속시켜 다른 이데아들과는 달리 변증법적 탐구로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4. '칼론'은 플라톤에게 윤리적 칭찬으로 사용되지 않으며, 오직 신체적 매력과 관련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용어이다.
5. 플라톤은 미를 지성적인 실재로만 간주하여 가시적인 측면을 부정하고, 형이상학에서 그 중요성을 축소한다.
<힌트>
1. 플라톤은 '칼론'을 현대의 '아름다움'보다 더 좁은 범위로 사용하며, 얼굴이나 몸에 더 자주 적용한다고 지문에서 언급한다.
2. 히피아스는 미의 본질에 대한 정의를 제공하지 못하고, 대화는 결론 없이 끝난다고 지문에 나온다.
3. 플라톤은 미를 선이나 유용성에 종속시키지 않으며, 미는 다른 이데아들과 마찬가지로 변증법적 탐구를 통해 발견된다고 지문에서 설명한다.
4. '칼론'은 플라톤에게 윤리적 칭찬의 의미로 사용되며, 선함을 보완한다고 지문에 명시되어 있다.
5. 플라톤은 미를 가시적이면서도 지성적인 독특한 존재로 간주하며, 형이상학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지문에서 밝힌다.

<틀린 선택지>
- 플라톤은 '칼론'이 '아름다운'으로 번역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칼론'이 예술 작품이나 자연 경관에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아름다운'보다 더 좁은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 플라톤은 『대 히피아스』에서 소크라테스를 통해 미를 '적합한 것'으로 정의하고, 이를 통해 18세기 철학자들이 논의한 미와 선의 관계를 미리 예견한다.
- 플라톤은 미를 이데아 중 하나로 간주하지만, 다른 이데아들과 달리 변증법적 탐구를 통해 발견될 수 없다고 여긴다.
- 플라톤은 신체적 매력에서 비롯된 욕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칼론'이 지닌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이 이러한 욕망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 플라톤에 따르면, '칼로스 카가토스'는 '아름답고 선한'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주로 예술 작품이나 자연 경관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힌트>
- 플라톤은 '칼론'이 예술 작품이나 자연 경관보다 얼굴이나 몸에 더 자주 사용된다고 말한다.
- 플라톤은 미를 '적합한 것'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는 18세기 철학자들이 논의한 미와 선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언급했을 뿐, 직접 미를 '적합한 것'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 플라톤은 미를 다른 이데아들과 마찬가지로 변증법적 탐구를 통해 발견된다고 말한다.
- 플라톤은 '칼로스'가 신체적 매력을 연상시키며, 그러한 매력이 불러일으키는 욕망에 대해 경계한다.
- '칼로스 카가토스'는 '고귀하고 훌륭한'을 의미하는 윤리적인 용어이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칼론(καλόν)"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 칭찬의 의미를 포함하여 '고귀하고 훌륭한'이라는 윤리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는 현대의 미 개념보다 좁거나 특별한 맥락에서 사용된다.

-"적합한 것(to prepon)"은 미를 정의하고자 할 때 사용되는 개념으로, 사물이나 행동이 자신의 목적이나 본질에 가장 잘 맞는 상태를 뜻하며, 이는 18세기 철학자들이 미와 선의 관계를 논의할 때 사용한 기준과 유사하다.

-"이데아(Form)"는 플라톤의 형이상학에서 본질적 실재로서 존재하는 개념으로, 미를 포함한 모든 사물의 본질이 변증법적 탐구를 통해 인식될 수 있는 독립적이고 지성적인 존재임을 강조하며, 이는 구체적 예시와 대조되어 본질적 정의를 추구하려는 시도를 나타낸다.



(연습문제 2)


플라톤은 미(美)가 철학적 인식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심포지움』에서 소크라테스는 디오티마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사랑의 대상이자 모든 욕망의 대상인 미를 설명한다. 디오티마는 영혼이 한 몸의 아름다움에서 모든 아름다운 몸으로, 다시 아름다운 영혼과 법, 지식의 종류를 거쳐 궁극적으로 미 자체에 도달하는 과정을 제시한다. 이처럼 에로틱한 욕망은 가시적인 경험 안에 있지만, 사유하는 관찰자를 순수한 지성적 미로 이끌 수 있다. 그러나 플라톤은 시(詩)를 미의 전형으로 간주하는 데 주저하였다. 『국가』에서는 시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며 검열하고, 시의 미를 기만적이라고 비판한다. 화려한 언어를 제거하고 평범한 말로 표현하면 시의 매력이 사라진다고 주장하며, 시의 매혹을 진정한 미가 아닌 것으로 간주한다. 반면 플라톤은 자연의 미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찬미한다.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는 강가의 아름다운 장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자연의 미를 인정한다. 또한 『티마이오스』에서 우주(ouranos)와 세계(kosmos)를 아름다운 것으로 묘사하며, 천상의 미를 철학의 기원으로 연결한다. 플라톤은 미가 이데아(Form)의 하나로서 존재하며, 이는 정의나 용기와 같은 평가적 개념이라고 보았다. 이데아로서의 미는 감각 경험과 지성적 인식의 매개체로서, 인간이 알고자 하는 독특한 형태이다. 그러나 미를 통한 학습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영혼이 감각적인 욕망을 지성적인 욕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플라톤은 시각적 경험에 대해 양가적인 태도를 보이며, 미의 시각이 자신을 넘어 더 높은 미의 인식을 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궁극적으로 미는 영혼을 지성의 세계로 이끄는 교육적 효과를 가지며, 이는 플라톤이 미의 선함과 그 결과를 논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시나 예술이 철학적 계몽을 방해할 수 있다고 보았기에, 플라톤은 시의 매력을 경계하였다. 그는 무엇이 정신을 지식과 이데아로 이끄는지에 주목하며, 아름다운 사물은 이를 훌륭하게 수행하지만, 시는 그렇지 못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시가 정신을 추상적이고 지성적인 것에서 멀어지게 할 때, 그 매력은 겉치레에 불과하다고 판단하였다.

<틀린 선택지>
- 플라톤은 시를 미의 최고 형태로 여기며, 시가 영혼을 이데아로 이끈다고 믿었다.
- 플라톤은 감각적 욕망을 지성적 욕망으로 전환하지 않아도 이데아의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 『파이드로스』에서 플라톤은 자연의 미를 부정하고, 오직 지성적 세계의 미만을 강조하였다.
- 플라톤은 미를 정의나 용기와 같은 평가적 개념과는 별개의 것으로 보아 이데아로서 인정하지 않았다.
- 플라톤은 미의 시각이 감각적 경험에 머물러야 하며, 더 높은 미의 인식을 향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힌트>
- 그러나 지문에서 플라톤은 시를 미의 전형으로 간주하는 데 주저하였고, 시의 매력을 기만적이라고 비판하였다.
- 그러나 지문에서는 영혼이 감각적 욕망을 지성적 욕망으로 전환해야 학습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 그러나 지문에서 소크라테스는 강가의 아름다운 장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자연의 미를 인정한다.
- 지문에서는 플라톤이 미를 정의나 용기와 같은 평가적 개념으로서의 이데아 중 하나로 보았다고 한다.
- 그러나 지문에서 플라톤은 미의 시각이 자신을 넘어 더 높은 미의 인식을 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틀린 선택지>
- 플라톤은 아름다운 육체를 관조하는 행위가 곧바로 순수한 미의 이데아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 플라톤은 시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면서도, 젊은이들의 교육적인 차원에서 시를 엄격하게 검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플라톤은 자연의 미를 통해 인간이 감각적인 쾌락을 초월하여 이데아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는 시의 감각적 유혹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다.
- 플라톤은 예술 작품이 지닌 아름다움을 인정했지만, 이데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고 평가하였다.
- 플라톤에 따르면, 시는 인간의 영혼을 물질세계에 속한 저급한 욕망에 얽매이게 함으로써 진정한 아름다움과 지식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힌트>
- 플라톤은 아름다운 육체의 관조가 순수한 미의 이데아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영혼의 단련과 지성적 사유가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 플라톤은 시의 아름다움을 기만적이라고 비판하며, 젊은이들의 교육을 위해 시를 검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시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 플라톤은 자연의 미와 시의 미를 모두 경계의 대상으로 보았다.
- 플라톤은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 플라톤은 시가 인간의 영혼을 물질세계에 속박시키는 것을 경계했지만, 저급한 욕망에 얽매이게 한다는 표현은 지문에서 찾을 수 없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이데아로서의 미(Form of Beauty)"는 플라톤 철학에서 감각 경험과 지성적 인식 사이의 매개체로 작용하며, 인간이 진리를 이해하기 위한 추구의 대상이 되는 독특한 형태를 의미한다.

-"철학적 계몽과 예술(Philosophical Enlightenment and Art)"은 플라톤이 예술, 특히 시가 젊은이들에게 미적 기만을 일으켜 철학적 진리 탐구를 방해할 수 있다고 보면서, 진정한 학문적 성장과 인식에 대한 방해 요소를 지적하는 개념이다.

-"에로틱한 욕망(Erotic Desire)"은 플라톤이 제시한 미적 경험이 인간 영혼을 궁극적인 '미 자체'로 향하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하지만, 그러한 욕망이 지성적 탐구로 전환되지 않으면 감각적 차원에 머물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연습문제 3)

플라톤의 '미메시스(mimêsis)'는 흔히 '모방'으로 번역되지만, '재현', '모의'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여 단순한 모방을 넘어선 복합적인 개념이다. 그는 미메시스를 예술에서의 오류나 무지 이상의 부정적인 요소로 간주하였으며, 특히 『국가』 제2권과 제3권에서 시(詩)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과 시인이 행하는 미메시스의 성격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여기서 미메시스는 작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감추고 마치 다른 인물인 듯이 말하는 행위로 정의되며, 이는 작가가 자신을 타인의 모습으로 변화시켜 거짓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행위는 창작 과정뿐만 아니라 공연과 연기의 측면에서도 나타나며, 미메시스가 작가와 배우 모두에게 적용되는 개념임을 시사한다. 플라톤은 미메시스를 통해 악한 인물이나 부정한 성격을 모방하면 모방자 자신도 그들의 부정적인 특성을 내면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특히 젊은 수호자들의 교육에 있어 부적절한 역할 모델을 제공하여 그들의 도덕성과 성품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그는 교육에서 부정적인 내용과 형태를 가진 시와 예술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미메시스가 개인의 영혼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도덕적 질서에 위협이 된다고 본다. 또한 그는 미메시스가 창작과 연기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도덕적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이는 예술이 단순한 표현의 영역을 넘어 윤리적 책임을 수반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리스토파네스 역시 미메시스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였는데, 그는 미메시스가 자연의 질서를 교란시키고 삶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보았다. 결국 플라톤에게 미메시스는 예술의 핵심적인 개념이지만, 그 잠재적인 윤리적 위험성 때문에 신중한 고찰과 규제가 필요하다고 결론짓는다.

<틀린 선택지>
- 플라톤은 미메시스를 예술의 긍정적인 요소로 간주하여 교육에서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플라톤은 미메시스가 작가와 배우에게만 적용되며 일반 대중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았다.
- 플라톤은 미메시스를 통해 악한 인물을 모방하면 모방자 자신이 긍정적인 특성을 내면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 아리스토파네스는 미메시스를 자연의 질서를 유지하고 삶을 조화롭게 만드는 긍정적인 개념으로 이해하였다.
- 플라톤은 미메시스가 창작과 연기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도덕적 판단을 강화한다고 주장하였다.
<힌트>
- 첫 번째 선택지는 플라톤이 미메시스를 부정적인 요소로 간주하여 교육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반대되는 내용이다.
- 두 번째 선택지는 플라톤이 미메시스가 작가와 배우뿐만 아니라 모방하는 모든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 것을 간과하고 있다.
- 세 번째 선택지는 플라톤이 미메시스를 통해 악한 인물을 모방하면 부정적인 특성을 내면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과 반대되는 내용이다.
- 네 번째 선택지는 아리스토파네스가 미메시스를 부정적으로 보았다는 지문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 다섯 번째 선택지는 플라톤이 미메시스가 창작과 연기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도덕적 판단을 흐릴 수 있다고 지적한 것과 반대되는 내용이다.

<틀린 선택지>
- 플라톤은 미메시스를 예술의 본질적인 요소로 보았지만, 아리스토파네스는 미메시스가 윤리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플라톤과 의견을 달리했다.
- 플라톤은 미메시스가 창작 과정에서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 플라톤은 시인들이 미메시스를 통해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았다.
- 아리스토파네스는 플라톤과 달리 미메시스를 통해 인간의 도덕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고 믿었다.
- 플라톤은 미메시스를 예술의 근본적인 속성으로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지닌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힌트>
- 플라톤과 아리스토파네스는 모두 미메시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미메시스가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플라톤과 의견을 같이했다.
- 플라톤은 미메시스를 작가가 자신을 숨기고 타인을 모방하는 행위로 보았기 때문에, 창작 과정에서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 플라톤은 미메시스가 젊은 수호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으며, 미메시스를 통해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 아리스토파네스는 미메시스를 부정적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플라톤과 의견이 일치한다.
- 플라톤은 미메시스의 윤리적 위험성을 경고했으며, 미메시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플라톤의 미메시스(Platonic Mimêsis)"는 단순한 모방을 넘어선 재현과 모의를 포함하는 복합적인 개념으로, 예술에서 작가와 배우가 악의 특성을 내면화하며 도덕적 판단을 흐릴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닌다고 본다.

-"예술의 윤리적 책임(Ethical Responsibility of Art)"은 예술이 단순한 표현에 그치지 않고 사회와 개인의 도덕적 질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책임을 수반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미메시스는 이를 통해 부정적인 인물을 모방함으로써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교육에서의 역할 모델(Role Models in Education)"은 특히 젊은 수호자들의 도덕성과 성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물의 모방을 피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주장을 반영하여, 교육적 맥락에서 긍정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연습문제 4)


플라톤의 대화록인 『소피스트』와 『국가』에서는 모방(mimêsis)의 개념이 심도 있게 탐구되는데, 특히 『소피스트』에서 모방은 소피스트를 정의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며, 소피스트는 모방자(mimêtês)이자 주술사(goêtês)로서 기만적인 시인과 유사한 존재로 묘사된다(235a). 두 대화록 모두 모방을 조롱하며 세계를 창조하는 행위로 특징짓고, 모방이 사람들을 오도한다고 비판하지만(234b–c), 『소피스트』는 사람들이 성장하면 거짓된 유사성을 간파하게 된다고 약간 더 낙관적으로 전망한다(234d). 또한 두 작품 모두 모방을 신의 작품과 대비시키는데, 『소피스트』에서는 신들이 모든 생명체와 이미지(eidôla)를 만들며, 꿈, 그림자, 반사 등이 그 예시로 제시된다(265c–d, 266a). 그러나 『소피스트』는 모방을 정직한 유사(eikasia)와 환영적인 이미지(phantasma)로 구분하여, 현실적인 조각을 만드는 이들이 실제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보는 이의 관점에 맞추어 작업한다고 지적한다(235d–236b). 이러한 구분은 다른 대화록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것이며, 일시적으로나마 모방의 긍정적인 측면을 인정하는 듯하지만, 결국 기만적인 모방만을 강조하여 긍정적인 모방은 주변화된다. 엘레아의 손님은 모방을 자신의 목소리와 몸으로 거짓 이미지를 구현(enact)하는 행위로 축소하며, 이를 통해 연극적 재현이 기만적인 이미지 제작의 하위 범주로 편입된다(267a). 이는 본질적으로 모방의 기술(technê)이 거짓되고 허위적인 예술임을 의미하며, 『국가』 10권에서처럼 모방은 근본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다른 대화록에서는 모방의 긍정적인 역할이 강조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티마이오스』에서는 우주가 이성적 원형의 모방으로서 아름답다고 언급되며(39e, 44d), 인간이 자연을 모방함으로써 학습과 미덕을 실현한다고 제시된다(47c, 80b). 최근 연구들은 플라톤이 모방에 대해 통일되고 안정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복잡성은 부정적인 모방과 긍정적인 모방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며, 특히 개인의 성격을 묘사하는 모방이 왜 기만적인 것으로 간주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낳는다. 『국가』는 시적 모방이 지식을 약화시키며, 시가가 사람들을 지식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주술적인 효과를 가진다고 지적한다(595b, 598d, 602d). 이는 다른 대화록에서 시적 영감이 신적 기원으로 설명되는 것과 대조되며, 플라톤이 모방과 영감을 시에 대한 서로 상이한 설명으로 보았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모방은 기만적이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예술 형태로 나타나며, 이를 통해 플라톤은 시와 예술이 인간의 영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심층적인 철학적 탐구를 전개한다.

<틀린 선택지>
1. 플라톤은 「소피스트」와 「국가」에서 자연을 모방함으로써 인간이 지식과 미덕을 성취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이를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 플라톤은 그의 모든 대화록에서 모방에 대해 통일되고 안정적인 개념을 견지하며, 항상 그것을 본질적으로 긍정적인 힘으로 묘사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3. 「소피스트」에서 플라톤은 정직한 유사와 환영적인 이미지를 전혀 구분하지 않고, 모든 형태의 모방을 동일하게 기만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어떤 모방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4. 엘레아의 손님은 모방에서 극적 재현을 진실한 이미지 제작의 정점으로 격상시키며, 이를 통해 모방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예술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5. 「국가」와 달리, 「소피스트」에서는 시적 영감이 신성한 기원으로 설명되며, 시적 모방이 사람들을 지식으로 이끌어준다고 플라톤은 명확하게 주장한다.
<힌트>
1. 지문에서는 자연을 모방하여 지식과 미덕을 성취하는 것은 「티마이오스」에서 언급되며, 「소피스트」와 「국가」에서는 모방이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2. 지문에 따르면 플라톤은 모방에 대해 통일되고 안정적인 개념을 가지지 않았으며,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하고 때로는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3. 지문에서는 「소피스트」에서 정직한 유사와 환영적인 이미지를 구분하는 독특한 구분이 나타나며, 모방의 긍정적인 측면을 일시적으로 인정한다.
4. 지문에 따르면 엘레아의 손님은 모방을 거짓 이미지를 자신의 목소리와 몸으로 수행하는 행위로 축소하며, 극적 재현을 기만적인 이미지 제작의 하위 범주로 편입시킨다.
5. 지문에서는 「소피스트」가 시적 영감을 신성한 기원으로 설명한다는 언급이 없으며, 오히려 시적 영감의 신적 기원은 다른 대화록에서 논의된다.

<틀린 선택지>
- 플라톤은 『소피스트』에서 소피스트를 모방자와 주술사로 규정하며, 이들의 모방 행위가 현실의 참된 본질을 드러낸다고 칭송한다.
- 플라톤은 『소피스트』에서 모방을 정직한 유사와 환영적인 이미지로 이분하지만, 두 유형 모두 궁극적으로는 신의 창조 행위를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 플라톤의 『소피스트』와 『국가』는 모방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공유하지만, 『티마이오스』는 우주 창조를 포함한 모든 창조 행위를 모방으로 정의하며 긍정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 플라톤의 대화록에서 일관되게 비판되는 시적 모방은 신적인 진리를 전달하는 데 유용하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왜곡이 발생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 플라톤은 예술적 모방, 특히 시적 모방이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고 고양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개인의 도덕적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힌트>
- 플라톤은 『소피스트』에서 소피스트를 모방자와 주술사로 규정하지만, 이들의 모방 행위를 칭송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피스트의 모방은 기만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 플라톤은 『소피스트』에서 모방을 정직한 유사와 환영적인 이미지로 이분하지만, 두 유형 모두 신의 창조 행위를 반영한다는 주장은 제시문에서 찾아볼 수 없다.
- 플라톤의 『소피스트』와 『국가』는 모방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공유하고,  『티마이오스』는 우주가 이성적 원형의 모방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모방을 제시하지만, 모든 창조 행위를 모방으로 정의하지는 않는다.
- 플라톤의 여러 대화록에서 시적 모방은 일관되게 비판의 대상이 된다. 특히 『국가』에서 시적 모방은 지식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묘사되며, 신적인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
- 플라톤은 예술적 모방, 특히 시적 모방이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고 고양시키는 힘을 지닌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시적 모방은 인간을 지식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주술적인 효과를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 "모방의 기술(테크네, technê)"은 플라톤 철학에서 예술 및 창작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로, 본질적으로 기만적이며 허위적인 것으로 간주되는데, 이는 현실의 모습을 재현하려는 시도가 본질적 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포함한다.  
- "정직한 유사(eikasia)와 환영적인 이미지(phantasma)"의 구분은 플라톤의 『소피스트』에서 현실적인 모방과 기만적 모방을 구별하려는 시도로, 이는 모방이 단순한 시각적 유사성을 넘어 도덕적, 인식론적 영향을 갖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 "시적 모방의 주술적 효과"는 플라톤의 『국가』에서 시가가 인간의 지성을 약화시키고 지식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기만적인 힘을 지닌다고 주장하는 개념으로, 이는 시와 예술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복합적인 영향을 설명한다.


(연습문제 5)


플라톤은 시인이 자신의 시를 창작하는 과정에서 신적 영감(divine inspiration)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이는 시인이 운명이 허락한 순간에 신의 개입으로 인해 본래 가질 수 없는 가치를 시에 부여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영감의 개념은 시인이 과거의 사건이나 신들의 삶에 대한 정보를 신적 원천으로부터 받거나, 일반적으로 시를 창작하는 데 필요한 재능을 부여받는다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플라톤 이전의 그리스 문화에서도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는 작품의 서두에서 뮤즈(Muse)에게 영감을 불어넣어달라고 청하며, 이는 신적 영감의 전통을 보여준다. 플라톤은 이 영감의 개념을 새롭게 해석하여, 지혜(sophia)와 대비되는 것으로 제시하였다. '아폴로지아'에서 소크라테스는 시인들이 훌륭한 시를 쓰지만 그들 자신은 그 작품에 대해 설명할 수 없음을 지적하며, 이는 그들이 지식 없이 본성(physis)에 따라, 그리고 신의 영감을 받아 창작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플라톤은 시인이 뮤즈의 삼각대(tripod)에 앉아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을 창작하며, 이로 인해 그들은 모순된 진술을 하게 되고 자신이 말하는 것이 진실인지 알지 못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모방(mimesis)은 관객으로 하여금 진실을 평가하거나 탐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빼앗으며, 이는 '국가'에서의 논의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플라톤은 시인이 신적 영감을 받는 과정에서 개인의 통제와 공로를 잃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시의 가치와 권위가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이는 신탁(priestess)이 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때 그녀의 정신적 개입이 최소화될수록 그 권위가 강화되는 것과 유사하다. 또한 '메논'에서는 정치가, 예언자, 시인 등이 영감을 받을 때 많은 진실을 말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언급하며, 이는 그들이 지식 없이도 신적 은총으로 진리를 전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플라톤은 이러한 영감이 시인의 무지(ignorance)와 결합되어 있지만, 그 결과물은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논의는 '이온'에서 더욱 구체화되는데, 이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호메로스의 시를 연기하고 해석하는 음유시인(rhapsode) 이온을 만나게 된다. 이온은 자신이 호메로스만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으며, 다른 시인들의 작품에는 관심이 없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이온의 편향성을 지적하며, 이는 그가 기술(technê)이 아닌 신적 영감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플라톤은 시인이 지식 없이도 신의 영감을 통해 훌륭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지만, 이는 그들이 진리를 전달하면서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초래한다고 결론짓는다. 이로써 플라톤은 예술 창작에서 영감과 지식, 모방과 진리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하며, 시인의 역할과 작품의 가치를 재평가한다.

<틀린 선택지>
- 플라톤은 시인이 신의 영감을 받을 때 지식과 통제력을 잃고 작품의 가치와 권위도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 소크라테스는 '메논'에서 시인들이 신의 영감 없이도 기술(technê)을 통해 훌륭한 시를 창작한다고 언급했다.
- 이온은 여러 시인의 작품을 해석할 수 있었지만, 호메로스의 시에만 관심을 보였다.
- 플라톤은 시인의 영감이 지식(sophia)과 결합되어 진정한 지혜를 이끌어낸다고 보았다.
- 플라톤 이전의 그리스 문화에서는 시인이 신적 영감을 받는 개념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힌트>
- 플라톤은 시인이 지식과 통제력을 잃지만, 그로 인해 작품의 가치와 권위는 오히려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 '메논'에서 소크라테스는 시인들이 신적 영감으로 진리를 전달하지만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고 언급했다.
- 이온은 호메로스만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다른 시인의 작품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 플라톤은 영감을 지식(sophia)과 대비되는 것으로 보았으며, 시인이 지식 없이 창작한다고 보았다.
- 플라톤 이전에도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 등이 뮤즈에게 영감을 청하며 신적 영감의 전통이 존재했다.

<틀린 선택지>
- 플라톤은 시인들이 창작하는 시의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창작 활동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시인들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한다.
- 플라톤은 시인들이 지식을 기반으로 시를 창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신적인 영감에 의존하는 창작 방식을 비판하고 시인 스스로가 작품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플라톤에 따르면,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는 뮤즈에게 영감을 구하는 것을 통해 시적 재능을 얻었지만, 이러한 영감은 시인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 플라톤은 시인의 영감을 뮤즈의 삼각대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시각화하여 묘사하며, 이는 시인들이 이성과 논리보다는 감정과 직관에 의존하여 시를 창작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 플라톤은 '메논'에서 정치가, 예언자, 시인들이 영감을 통해 진실을 말하는 것을 예로 들며, 이들의 공통점은 탁월한 지적 능력을 바탕으로 진리를 탐구하고 전달한다는 점이라고 주장한다.

<힌트>
- 플라톤은 시인들이 창작하는 시의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비판하면서도, 신적 영감을 통해 창작된 시의 가치와 권위를 인정하는 입장을 취한다.
- 플라톤은 시인의 창작 활동에서 신적인 영감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시인들이 작품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 플라톤 이전의 그리스 문화에서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는 뮤즈에게 영감을 구하는 것을 통해 시적 재능을 얻고자 했으며, 플라톤은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시인의 영감에 대한 개념을 발전시켰다.
- 플라톤은 시인의 영감을 뮤즈의 삼각대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시각화하여 묘사하며, 이는 시인들이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의 영감을 받아 시를 창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플라톤은 '메논'에서 정치가, 예언자, 시인들이 영감을 통해 진실을 말하는 것을 예로 들며, 이들은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졌다기보다는 신의 은총으로 진리를 전달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신적 영감(Divine Inspiration)"은 시인이 창작 과정에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신의 개입을 받아 영감을 얻는 것으로, 이는 그리스 문화에서 뮤즈의 영향을 받는 전통으로 나타난다.

-"모방(Mimesis)"은 예술 작품이 현실을 그대로 흉내내거나 재현하는 방식으로, 플라톤은 이를 통해 관객이 진실을 판단하거나 탐구하는 능력을 약화시키는 요소로 보았다.

-"지식 없이 창작(Ignorant Creation)"은 시인이나 예술가가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신적 영감에 의존하여 작품의 진리를 전달하는 상황으로, 이는 예술과 지식의 관계에서의 역설을 강조한다.


(연습문제 6)


플라톤은 모방(μίμησις)이 두 가지 측면에서 실패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모방은 현실이 아닌 외양(外樣)에서 출발하여 그 결과물은 비천한 기원을 가진다; 둘째, 모방 예술은 영혼을 올바른 탐구 대상에서 멀어지게 하고 오로지 외양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반면에 고대 그리스의 전통적인 시각 예술은 신들의 존재를 상징하는 표식으로서 보이지 않는 신성한 힘과의 접촉점을 제공하였다. 초기의 봉헌물들은 단순한 나무판이나 길쭉한 돌과 같이 비(非)재현적인 형태였지만, 이는 신들의 현존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졌다. 플라톤은 이러한 경건한 옛 예술과 후대의 모던한 형태를 구분하며, 시(詩)에서도 유사한 구분을 한다. 아름다움(κάλλος)은 이데아(Forms)의 영역에서 시작되며, 그 본질적 형상으로 인해 영혼을 철학적 성찰로 이끈다. 특히 아름다움의 이데아는 다른 어떤 이데아보다도 영혼을 강력하게 사로잡아 절대적 아름다움에 대한 사색과 이후의 개념적 숙고를 촉진한다. 한편, 플라톤은 영감(ἔνθεος)이 시와 예술에 작용하여 지혜를 담을 수 있다고 인정하지만, 이러한 영감이 이데아의 영역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명확히 밝히지는 않는다. 『파이돈』에서 영감을 기억(ἀνάμνησις)과 연관시키지만, 이는 시인의 신적 광기(μανία)가 더 높은 현실의 객체에서 기원한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모방과 영감 사이의 명확한 관계 설정이 부재하기 때문에, 플라톤의 미학을 통일된 이론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 영감, 모방에 대한 논의에서 종교적 관점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을 고려할 때, 플라톤의 미학은 그의 신학(神學) 내에서 보다 통합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아름다움이 신성(神性)에 가까운 지위를 지니고, 모방이 아테나와 같은 신들의 적으로 묘사되며, 영감이 신적 작용 없이는 정의될 수 없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플라톤의 미학은 그의 종교적 사유와 연관성을 통해 그 일관성과 완전성을 찾을 수 있다.

<틀린 선택지>
플라톤은 모방 예술이 영혼을 올바른 탐구 대상으로 이끌어 외양보다 본질에 집중하도록 한다고 믿었다.
『파이돈』에서 플라톤은 영감을 기억과 연관시켜 시인의 신적 광기가 더 높은 현실의 객체에서 기원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아름다움의 이데아는 영혼을 철학적 성찰로부터 멀어지게 하며, 절대적 아름다움에 대한 사색을 방해한다.
플라톤은 경건한 옛 예술과 후대의 모던한 형태를 모두 동일하게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시에서도 차이를 두지 않는다.
플라톤의 미학은 주로 철학적 개념에 집중하며, 종교적 관점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힌트>
지문에 따르면 플라톤은 모방 예술이 영혼을 올바른 탐구 대상에서 멀어지게 한다고 주장하므로, 영혼을 본질에 집중하도록 이끈다는 내용은 부합하지 않는다.
지문에서는 플라톤이 『파이돈』에서 영감을 기억과 연관시키지만, 이는 시인의 신적 광기가 더 높은 현실의 객체에서 기원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한다.
지문에 따르면 아름다움의 이데아는 영혼을 철학적 성찰로 이끌고 절대적 아름다움에 대한 사색을 촉진한다고 하므로, 영혼을 멀어지게 한다는 내용은 부당하다.
플라톤은 경건한 옛 예술과 후대의 모던한 형태를 구분하며, 시에서도 유사한 구분을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둘을 동일하게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내용은 지문과 맞지 않는다.
지문에서는 플라톤의 미학에 종교적 관점이 강하게 드러난다고 하므로, 종교적 관점이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는 내용은 부당하다.

<틀린 선택지>
- 플라톤은 초기 그리스 예술의 단순한 형태를 비판하며, 이러한 예술 형태가 신들의 현존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 플라톤은 시에서 영감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이데아의 영역과 명확하게 연결하지 않아, 시인의 창조적 능력을 제한적으로만 인정한다.
- 플라톤은 아름다움을 이데아의 영역에 위치시킴으로써 예술 작품이 지닌 아름다움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긍정한다.
- 플라톤은 예술 작품이 영혼을 현혹하는 모방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예술의 교육적, 윤리적 기능을 부정한다.
- 플라톤에 따르면  모방은 현실의 외양을 묘사하는 데 그치기 때문에, 진정한 예술은 이데아를 직접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힌트>
- 플라톤은 초기 그리스 예술의 단순한 형태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들의 현존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 후대의 모방 예술보다 더 높이 평가한다.
- 플라톤은 시에서 영감의 역할을 인정하지만 이데아와의 명확한 연결을 제시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시인의 창조적 능력을 제한적으로만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플라톤은 아름다움을 이데아의 영역에 위치시키지만, 예술 작품이 지닌 아름다움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방으로서의 한계를 지적한다.
- 플라톤은 예술 작품이 영혼을 현혹하는 모방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사실이나, 예술의 교육적, 윤리적 기능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예술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질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 플라톤은 모방이 현실의 외양을 묘사하는 데 그친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정한 예술이 이데아를 직접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 "모방(μίμησις)"은 플라톤 철학에서 예술의 본질이 현실의 외형을 재현하는 것에 불과하며, 이는 진정한 탐구에서 벗어나고 영혼을 피상적인 것에 집중하게 만든다고 보는 개념이다.

- "이데아(Forms)의 아름다움"은 영혼을 철학적 성찰로 이끄는 초월적이고 본질적인 아름다움으로, 플라톤은 이데아의 영역에서 비롯된 미적 경험이 영혼의 깊은 사유를 촉진한다고 주장한다.

- "신적 광기(μανία)"는 플라톤이 예술과 시에 영향을 미치는 신성한 영감의 상태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이는 단순한 모방 이상의 깊이를 지니고 있으나 이데아의 직접적 산물로 규명되지는 않는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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