夢中人 [1120753] · MS 2021 (수정됨) · 쪽지

2024-05-20 07: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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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ysics Code 선생님 보고 든 생각. 장문.

게시글 주소: https://mclass.orbi.kr/00068126301

솔직히 전부터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강의도 하고 칼럼이나 자료도 올리고 하는데 그 앞에 가서 내 맘에 안 든다고 깽판 치면 내가 이상한 거고, 나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사람에 대한 혐오를 이유 없이 적극적으로 전시하고 싶지 않기도 했고…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가만히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어떤 점이 별로였는지, 또 어떤 점은 괜찮았는지를 담백하게 밝히고 싶어서가 주된 이유다. 피코님에 대한 내 나름의 (몰)이해를 공유하고 싶어서… 어떤 행적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고, 그래서 나는 이런 느낌을 받았다 하는 식일 테니 나에 대한 글이기도 하겠다. 그걸 여기다 밝히고 공유해서 뭐 하냐? 뭐 할 건 없음…

솔직히 말해서 커뮤니티 떡밥이라서 무는 것이기도 하다. 평소부터 별로라고 생각하던 사람으로서, 내가 별로라고 했제?(안 했음) 하고 싶기도 하고.. 다만 오락성의 발로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지만, 오락으로만 여기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어쩌면 당사자가 에고서치를 하다가 이 글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정 부분은 당사자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당사자에게 나야 뭐 아무도 아닌 타인이겠지만, 나는 이 사람을 1년 남짓한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나마, 커뮤니티 게시글이라는 필터를 거쳐서나마, 동년배라는 나 혼자만의 동질감, 신기함, 때로는 부러움 등을 가지고 어느 정도 주의깊게 봐왔고.. 그냥 몇 마디 전하고 싶다.

수정: 이 글을 쓰던 중 ‘오르비를 떠나려 합니다.’ 게시물을 수정하신 것을 보았는데요, Physics Code님을 제1의 독자로 생각하고 쓰기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원래는 잡담 태그로 모아보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제 글을 피드로 받아 보는 불특정 다수를 염두에 두고 예사말로 쓴 것인데, 동년배에게 말을 놓는다는 생각으로 쓰려고 합니다.


우선 조언 중 맘에 안 드는 게 많았다. 공부든 삶이든 그걸 보는 관점은 다양하겠지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포인트가 몇 개 있었다.

일단 물리야 뭐 당연히 잘하겠지만, 수능 물리*에 대한 관점에는 약간 의문이 들었다. (알고리즘을 잘 숙지하면) 주어진 조건에 따라 유일한 길이 보이고, 그 절차만 기계적으로 따라가면 아주 쉽게 답이 나온다, 뭐 이런 인상을 받았는데…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 대충 2~3등급 정도만 돼도 해설지의 풀이를 보고 납득은 할 수 있을 텐데, 그걸 스스로 떠올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실력이고, 이건 기계적으로 알고리즘을 적용만 하면 되는 결정적(deterministic이라는 의미에서)인 과정은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한다. 개고수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결정적인 알고리즘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게 학습자의 눈에는 그리 쉽게 보이지 않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이건 강의를 들어보지 않아서 그 방법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일 수도, 내가 수능 물리에서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지 못해서 하는 생각일 수 있고.. 아무튼 이건 이상하기까지 하지는 않고, 사소한 관점 차이라고 생각한다.

* 굳이 수능 물리라고 한 것은, 수능 물리는 내가 낫다 이런 게 전혀 아니고, 수능 물리도 당연히 나보다 훨씬 잘하겠지만… 수능 물리 문제가 정말 그렇게 생겨먹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는 말. 나는 한창 수능 공부 열심히 했을 때도 물리는 1등급만 겨우 받는 정도였다..

또 물리학, 특히 물2 선택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만 말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단적인 예로 24학년도도 아닌 23학년도 수능이 치러지기 전, 기억하기로는 10월 학평 표점을 근거로 다음 해 물2 선택을 권유하는 글을 쓴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아직 서울대 필수과목 해제가 표본수준 등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임에도 꽤 확신에 차 있다는 점에서 수능이나 정시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1~2주 정도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인생을 복리 내지는 투자(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는다)의 관점으로 보면서, 금전적 자산이 부족하다면 학벌이 큰 자산이 되기에 젊은 나이에 명문대를 위해 N수를 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정도의 글을 쓴 것도 보았다. 우선 나는 N수가 무용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투자보다는 (주로 학벌 그 자체에서 오는) 만족감의 측면에서 기꺼이 N수라는 비용을 지불할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투자의 관점에서는 N수가 대체로 손해일 것 같다. N수가 명문대 합격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일단 갈 수 있는 대학에 가서 나는 뭘 하고 살아야 할까 빨리 고민을 시작하는 게 많은 경우 낫지 않나 싶다… 또 나는 학벌이 모두에게 큰 자산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몇 년 전에 lacri님이 쓴 글(https://orbi.kr/00013479953)을 읽은 영향이다. 요약하자면, 라끌옹은 (수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산이 많을수록 명문대 학벌의 효용이 커진다는 입장인 것 같다. 이와는 별개의 논의로, 시간이 지날수록 학벌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생각도 들고. N수를 통해 명문대에 입학하게 된다면 (학벌 자체보다는) 그 성취의 경험이 유의미한 자산이 되리라는 생각은 든다. 피코 선생님 본인이 강사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리게 된 데도, 연세대라는 간판보다는 그 과정에서 생긴 자기효능감이 더 크게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이런 성취의 경험은 다른 길로도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수능은 실패했을 때 남는 게 많지 않은 시험이라는 점에서… 시험 자체가 전공 학업역량과 관련이 있는 편입 전형으로 연세대에 합격하신 선생님의 경험을 기반으로, 성격이 다른 시험인 수능 N수를 권하기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그러고 보면, 피코 선생님은 (대입 수험 강의가 전반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긴 하지만 유독) 연세대를 비롯한 간판을 언급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던 것 같다. 연세대 출신, 메가스터디 출신 등 소속과 이력을 강조했는데 솔직히 별로였다. 그러면서 댓글 등에서 누군가 입시 경험 등을 물을 때면 은근히 답변을 흐려 편입 사실을 밝히지 않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편입 자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원래 누구나 자기 소속을 강조함으로써 인정받으려고 하면 좀 그렇다. 예를 들면 그냥 정시나 수시로 신입학한 사람이 별 상관 없어 보이는 맥락에서 학벌 얘기를 자꾸 꺼내는 것도 별로다. 그런데 수능 보고 연세대 입학한 것 같은 뉘앙스를 연출하기까지 하니까 더 마음에 안 들었던 거다. 학교 다녀 보면 정시든 수시든 편입이든 다 병신같은 사람도 있고 뛰어난 사람도 있고 한데… 괜히 수능으로 입학한 척하지 말고, 편입했지만 수학이나 물리는 편입으로 연세대 갈 만큼 잘했다고 밝히고, 수능 쳐서 물리 성적 인증하고, 하면 어땠을까 싶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난 자료나 칼럼 꾸준히 올리는 등의 성실성, 학생들이 표지 예쁘다고 하니까 디자이너 초빙하는 자리(정확히 뭐 한다는 거였는지는 기억 안 나는데)를 마련해 보겠다고 하는 등의 추진력 같은 게 마음에 들었고, 실제로도 괜히 소속 티내는 것보다 그런 성실성과 추진력이 오르비에서 이름을 알리는 데 훨씬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본다. 물론 잠을 몇 시간밖에 안 잔다는 등 열심히 사는 티를 종종 과하게 낸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티를 좀 내야 사람들이 알아주니까… 난 좀 수동적이고 그런 걸 잘 못하는 편이라, 한편으로는 그런 적극성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신포도처럼 애써 싫어한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에고가 참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만큼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보니 그걸 메꾸기 위해 이런 얼탱없는 범죄를 저지른 것 같다. 빨리 성공해야겠다는 조바심을 버리지 못하면, 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계속 강의를 했더라도 언제 한번 대차게 스텝이 꼬였을 것 같다.

나도 N수를 오래 하느라 출발선이 늦어졌다는 생각 때문에 몇 년 전까지 조바심이 있었는데, 꼭 일찍 큰 성공을 거둘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학원강사로 성공하고자 한다면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곤란하겠지만 이제 강의도 그만둔다고 하니… 지은 죄에 대해 책임을 다하고, 커리어로나 금전적으로나 타격이 크겠지만 그래도 스물일곱이면 우린 아직 충분히 어린 나이니까 수능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자신의 장점을 살려 재기하기를, 그 과정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매일을 지탱해줄 작은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에 너무 무른 소리만 했나 싶어서, 잘못한 건 잘못한 거임. 조바심이 난다고 해서 모두가 남의 저작물을 도용하지는 않음. 그에 대한 책임은 지시고..

rare-전남대학교 rare-토론토 블루제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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