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고 내신 4.5등급의 정시 수능 역전, 그리고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시를 접수해보려고 하니
저는 학생부 서류를 학교에 따로 내야 하더라구요
그래서 동사무소에서 학생부를 발급받았습니다.
뽑아보니 생각이 나더라구요
'네 성적으로 갈만한 대학은 저기 시골 어디어디 뿐이다.'라고 말하던 모 교사......
등급으로 환산해보면
정확하지는 않은데 총합 4~5등급 정도입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십수년 전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도
내신은 암기였습니다.
고통 그자체였죠.
뺑뺑이 돌려서 간 고등학교에서
대다수 애들은 놀고 공부할 애들은 공부를 했죠
저는 수시로 가는 애들의 밑에서 깔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정작 학교도 애들 대학교 보내는 수준이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수시로 서울 상위권 대학에 겨우 몇몇 보내는 그 정도 수준?)
그 때 당시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래도 시험기간 때는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정작 성적은 잘 나오지를 않더라구요
입시 및 내신 시스템에 대해 잘 몰라서
원점수 80점 90점 나오면 좋아라 했었습니다
학원은 다들 가지 않았습니다. 학교 주변에 학원도 없었구요.
대신 학교 교사들의 강제 보충학습과 야간자율학습을 했습니다.
폭력도 일상이었습니다. 자다가 두들겨 맞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엉덩이 맞고 뭐......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부당한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도 즐거웠던거 같습니다.
학교에 도서관이 있었는데 거기서 정말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책 빌려서 야자 시간에 읽기도 하고
성적을 올릴 목적이 아니라 그냥 심심해서 교과서를 수십번 읽었습니다.
(특히 국사랑 문학 교과서...... 문학 책에 수록된 '어느날 심장이 말했다'라는 대본은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그래도 학창시절은 나름대로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애들과 놀기도 많이 놀고 판타지 소설도 많이 읽고 게임도 엄청나게 많이 하고......
저는 수학을 못하는 대신에 사탐은 점수가 잘 나오는 편이라
역시 제 체질은 문과라 생각해 문과로 갔습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보내다 고2 겨울방학이 되었습니다.
왜 공부를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다만 낮은 등급의 대학교를 가면 안 된다는 그런 생각은 있었습니다.
당시 교사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너 공부 못하면 공장가서 일해야 된다'
'너 xx대 가면 망하는거야' 그렇게 말하더군요.
'어떻게든 인서울을 해야한다'라는 말도 많이 들었구요.
그리고 학생들끼리도 그걸 반쯤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였었습니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만
저를 과거로 돌려보내준다면 저는 대학에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좋은 대학교와 인간의 행복은 전혀 관련이 없더군요.)
그나마 입시 제도를 잘 알던 한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라구요
너는 이 내신으론 xx대는 꿈도 못 꾸고
xx대밖에 못가니까 정시밖에 없다고......
그 당시 제 모의고사 성적이 어땠느냐면
고등학교 2학년 모의고사를 기준으로
당시 언어(지금의 국어)는 2등급~3등급을 오갔고
수리 나형(지금의 확통)은 원점수 30~50점에 3~5등급
외국어(지금의 영어)는 원점수 70점대에 3~5등급
유일하게 사탐만 늘 2등급이었습니다.
그 때 당시 메가스터디 인터넷 강의가 엄청나게 인기가 많았지만 그건 듣지 않았습니다.
학교 교사들도 사탐을 제외하곤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웬만한 것은 그냥 암기를 시키는 내신식 공부......
정말 지긋지긋했습니다.
수능 공부는 할만했습니다. 수능은 암기 위주는 아니라서요.
그런데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혼자 공부했습니다.
언어는 인터넷에서 고2 고3+교과평 수능 기출 찾아다 뽑아서 무작정 풀어댔습니다.
틀린 문제 있으면 왜 틀렸는지 해설 보면서 분석했습니다.
수리는 고1 교과서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고1 수학 개념도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누구나 보던 수학의정석은 저와 맞지 않아서 저 멀리 던져버렸습니다.
대신 교과서 공식 증명을 보며 이게 왜 이렇게 되나 이해해보고
그걸 4점짜리 기출문제에 응용해보려고 애썼습니다
외국어는 어법 위주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단어장 하나 사서 틈날 때마다 단어 보고
기출문제 뽑아서 풀어댔습니다.
사탐도 교과서랑 기출문제 위주로 공부했습니다
언수외탐 네 영역 모두 교과서+기출문제+ebs 안에서 해결했습니다.
사설 문제집은 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출문제들은 틀려도 왜 틀렸는지 납득이 가는데
사설은 납득이 안 가서요......
고3 3월 모의고사는 고2때와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6월달 교과평 모의고사때 성적이 껑충 올랐습니다.
언수외가 전부 2등급, 사탐이 1~2등급이 나오더라구요
교실 뒤에 붙어있던 배치표상으로 인서울은 충분히 가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수시는 포기했습니다.
될 가능성도 굉장히 낮으니 돈 낭비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역설적이게도, 내신은 고1 고2때에 비해 훨씬 잘 나왔습니다.
이유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9월 교과평을 응시했습니다.
6월보다 성적이 조금 더 올랐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수능 전 마지막 모의고사인 10월 교육청 모의고사를 응시했습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언수외 셋 모두 1등급이 나오고, 원점수로도 280점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수능을 응시했습니다.
(옛날에 캡쳐해둔 것이었는데, 지금은 인터넷으로 발급이 안 됩니다)
언수외가 원점수 합쳐서 290 좀 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사탐도 1~2등급 받았습니다.
(학생부, 생활기록부를 뽑아보지 않아)나중에야 알았던 사실이지만
당시 고3 담임 선생님이 이렇게 써주셨더라구요.
대학 진학, 취업 등을 거치다 보니 십수년이 지났습니다.
어릴 때 대학만 잘 가면 뭐든 될 줄 알았던 꼬마는
30대 늙은 아재+백수가 되었습니다.
인생 별 욕심도 없어서 도서관에서 책이나 보며 살다
문득 수능이랑 수시를 쳐보고 싶었습니다.
별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냥 궁금했습니다.
과연 내가 지금 수능 치면 몇 점 나올까......?
(내신이 똥이어서 수시를 못 썼던)내가 수시에 합격하는게 가능할까?
그냥 해보고 싶었습니다.
예전이라면 '합리'라는 생각 하에 포기했겠지만 그런 생각을 버린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교육청에 가서 수능을 접수했습니다.
그리고 더 귀찮음을 무릅쓰고 학생부를 뽑아다가 동네 대학교에 수시를 접수했습니다.
접수해두고 다시 이런거 저런거 하면서 살다 보니
수능 당일이 되었습니다.
진짜 치러 가기 귀찮았지만
그래도 (공부를 안 했지만) 수험생 된 기분이라도 느껴보려고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난생 처음 논술도 치러 갔습니다.
시계랑 수능 샤프, 지우개 들고
버스타고 털레털레......
전 고사장에 결시자 엄청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결시자도 거의 없어서 놀랐습니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어찌어찌 써서 내고 나니
오늘 이렇게 결과가 나오더라구요.
대학 갈 것도 아닌데 수능 치고 논술 치는게 무슨 의미냐 하시면
뭐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냥 해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나 궁금했어요.
제가 어릴 땐
인생의 어떤 트랙 위에서 탈출하면 제 인생이 끝장이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구요.
좋은 대학 가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더라구요.
사람마다 적성이 있는데 그거 맞춰 사는게 좋습니다.
전 한참 나중에서야 깨달았지만
제 적성은 '좋은 직업'하곤 전혀 맞지 않더라구요.
독서를 정말 좋아해서
막대한 독서량을 토대로 해서 수능 성적은 잘 나왔으며
이걸로 '좋은 대학'도 갔습니다만
만약 제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대학 안 가고 고등학교도 자퇴해버리고
적당히 기술 배워서 취업한 다음에
좋아하는 책이나 읽으며 살 겁니다.
농담 아닙니다.
물론 이게 정답이라는건 아닙니다.
각자에겐 각자에게 맞는 것이 있으니까요.
저 스스로가 대학-좋은직장-재산증식 등의 정석적 루트와는 거리가 멀었을 뿐이죠.
제 개인적 생각이지만
스트레스 안 받고 자기 하고싶은거 하며 살면 그걸로 족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음 가는대로 사는 것도 괜찮아요.
재수하면 어떻고 삼수하면 어때요.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거니
적어도 후회라도 없게 사는게 답이라면
마음 가는대로 사는것도 답인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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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1 문1 언2 91점 언매 클났다 이전 회차보다 문학이 좀 덜 깔끔한 느낌이 있음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