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희망하는 직업의 ‘산업적 흐름’을 잘 읽으십시오.
‘Money talks’는 대세입니다.
대입 커트라인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 문과계열 최고 커트라인인 경제학과와 ‘인 서울 의대’ 커트라인은 후자가 훨씬 높습니다.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생 평균 연봉과 인 서울 의대 평균 연봉은 비교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K컬춰가 세계적인 인기입니다. 인기 연예인이 연 수입 100억을 넘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부를 아무리 잘 해도’ 연봉 100억을 넘기기는 무척 힘듭니다.
그럼에도 ‘공부를 아주 아주 잘 하는’ 학생에게 “너 연예인 할래, 공부해서 의대 갈래”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공부를 택할 겁니다. 사회적 평판도 작용하겠지만, 평균 수입이 연예인보다는 의사가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연예인 평균 연봉은 의사 등 공부를 ‘아주 아주’ 잘해서 얻을 수 있는 직업의 평균 연봉보다 훨씬 적습니다. (유재석 등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사람만이 연예인이 아닙니다. 동네 허름한 클럽에서 연주하는 이들도 분명 연예인입니다.)
서설이 길었던 이유는, 어제 세계 바둑 대회 결과를 지켜보면서입니다. 중국에서 개최하는 몽백합배 16강 전에서 세계 1위 신진서를 비롯, 우리나라 선수 3명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세계 대회 16강 전에서 한국 선수가 전원 탈락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기는 합니다.
냉정히 되짚어보면, 이런 경향은 앞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봅니다.
개혁 개방과 더불어 중국 바둑이 본격적으로 굴기를 시작한 00년대 초반 이전, 한국 바둑은 명실상부한 세계 바둑계의 절대 강자였습니다. 중국 바둑이 굴기를 시작한 이후로도 한동안 한국 바둑은 이창호라는 절대 강자를 앞세워서 세계 바둑계를 제패했습니다.
한중일 삼국의 바둑기사가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1 대 1로 싸우는’ 바둑 대회를 1991년 SBS가 시작한 이후, 이런 형식의 ‘바둑 삼국지’는 진로배를 거쳐 농심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매년 열립니다. 모두 30차례 열렸습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05년도까지 12회 연속 우승했습니다. 중국 일본은 그냥 들러리 수준이었습니다.
우승 스타일은 그러나 90년대와 00년대가 조금 다릅니다.
중국 바둑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전인 90년대까지 한국은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서봉수 등 ‘빅 4’를 앞세워서 우승했습니다. 심지어 96년~97년에 열린 제3회 진로배에서, 서봉수 9단은 9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00년 이후는 이창호라는 절대 강자를 앞세워 우승합니다. 특히 04~05년 에 열린 제 6회 신라면 배에서 이창호는 한국 기사로는 홀로 남아서 중국 기사 3명, 일본 기사 2명을 꺾고 한국에 우승을 안깁니다. ‘한국 기사가 다 떨어져도 이창호가 남았다면 우승은 알 수 없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 시기입니다.
이창호가 30세를 넘어서며 소위 ‘에이징 커브’를 맞은 05년 이후, 한국의 독보적 위치는 무너집니다. 그나마 이창호가 버티던 2011년 2월까지, 한국은 여섯 번 더 열린 바둑 삼국지에서 네 차례 우승하지만, 이후 열두 번 더 열린 바둑 삼국지에서 다섯 차례 우승합니다. 중국 일곱 차례 우승, 일본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중국 바둑의 우세를 엿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나마 20년 10월 이후 열린 세 차례 대회에서 세계 1위 신진서 선수가 전성기 때의 이창호 역할을 하면서 한국의 3연속 우승을 이끌어 이 정도입니다. 신진서가 없었다면, ‘한국 바둑은 중국에 비비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진작에 나왔을 겁니다.
왜 이리 됐을까요? 왜 한국 선수 모두 몽백합배에서 16강전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게 됐을까요?
결국은 ‘돈’입니다.
우리나라에 프로 바둑기사는 모두 419명입니다. 정말로 어릴 때부터 지극히 뛰어난 사람만이 프로 바둑기사가 됩니다. 이들의 연봉은 어찌 될까요?
한국기원이 올해 1월 3일 밝힌 바에 따르면, 대국과 상금으로 22년 한 해 1억 원 이상을 받은 기사가 모두 13명입니다. 가장 상금이 많은 이는 세계 1위 신진서 9단으로 22년에 14억 4495만 원을 벌었습니다.(광고나 사적인 지도 대국 등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제외)
http://m.baduk.or.kr/news/B01_view.asp?news_no=4439
물론 세계 랭킹 1위 연봉 14억 원이나, 상위 13위 연봉 1억 200만 원이 적은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냉정하게 생각해보지요.
바둑기사 419명 중 단 13명만이 1억 원 이상을 벌었으니, 나머지 406명의 수입은 연 1억 원이 안 됐다는 뜻입니다. 1군 은행권의 평균 연봉이 1억 원이 넘는 세상입니다. 삼성전자 등 세계적 기업의 평균 연봉도 1억 원은 훌쩍 넘습니다. 그런데 한 해 10여 명 정도 입단하는 프로 바둑기사의 평균 연봉이 1억 원에 훨씬 못 미치는 겁니다. 한국기원 역시 ‘창피해서인지’ 바둑기사들의 평균 연봉은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둑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막말로, 은행에 입사하는 것이 어려울까요, 아니면 프로 바둑기사가 되는 게 어려울까요? 이러니 누가 프로 바둑기사가 되려고 할까요?
세계 랭킹 1위 신진서는 다르지 않느냐고 하실 수 있지만, 세계 랭킹 1위의 연봉이 15억 원이 안 되는 분야로는 인재가 절대로 모이지 않습니다. 프로축구나 프로야구, 아니면 프로 게이머의 세계 랭킹 1위가 얼마를 벌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 한국 연예인 수입 랭킹 1위의 연벌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반면, 90년대를 회상해 볼까요?
지금부터 22년 전인 2001년 12월 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01년 이창호의 상금(광고 등 부수입 제외)은 10억 원 이상입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창호는 95년 6억4천400만원, 97년 9억3천500만원, 98년 6억100만원, 99년 8억1천600만원을 벌었습니다.
https://v.daum.net/v/M0HjqbfICD
90년대 중반~후반이면, 서울에서 아무리 비싼 아파트도 평당 1000만 원이 안 되던 시절입니다. 32평형 아파트 가격이 아무리 비싸도 3억 원이 안 되던 때라는 뜻입니다. 이때 이창호는 IMF가 터지던 97년 9억 4000만 원 정도를 벌었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비싼 32평 아파트를 최소한 3채 정도는 살 정도의 연봉을 매해 벌었다는 뜻입니다. 이때 대기업 평균 연봉이 얼마였을까요? 프로야구선수들 연봉은 얼마였을까요? 유명 연예인은요?
23년 현재, 세계 랭킹 1위 신진서 선수의 22년 연봉 14억여 원으로는 서울 강남에서 32평 아파트 사기가 힘들 겁니다.
저 역시 바둑을 좋아하지만, 바둑은 ‘살아남기’가 점점 힘든 세상이 됐습니다. 지금과 같은 ‘말초적 속도’의 시대에 한 판을 두려면 3시간, 4시간 이상도 걸리는 바둑을 누가 즐기려고 할까요? 3~5분 정도의 유튜브 컨텐츠조차 길다면서 1분 이하의 쇼츠 영상이 판을 치는 마당에요.
그보다는 같은 스포츠로 분류되지만, ‘짧은 시간에 승부가 나며, 말초적 재미도 훨씬 뛰어난’ 게임이 바둑보다 압도적인 인기입니다. 프로 게이머가 프로 바둑기사보다도 돈도 ‘아주 훨씬’ 더 벌고요.
돈이 안 되니, 결국 ‘젊은 피’가 바둑에 모이지 않습니다. 이는 한국 프로 바둑기사 중 10위 안에 드는 기사의 연령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바둑은 수학적 연산 능력이 승패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에, 최고 전성기는 20대 중반에 이릅니다. 이후 ‘에이징 커브’에 이르면서 하락하고요. 결국, 20대 중반 이전 연령의 최고 수준 기사가 얼마나 많으냐가 무척 중요합니다. 그게 그 나라 바둑의 힘이기도 합니다.
한국기원은 05년 8월 이후 바둑기사의 랭킹을 매달 공개하고 있습니다. 05년 8월 한국 랭킹을 한 번 볼까요?
랭킹 1위는 이창호로 당시 30세였습니다. 2위 이세돌 22세, 3위 최철한 20세, 4위 박영훈 20세, 5위 조한승 22세, 6위 원성진 20세, 7위 박정상 21세, 8위 유창혁 39세, 9위 이영구 17세, 10위 조훈현 52세였습니다.
이창호 유창혁 조훈현을 제외한 7명이 모두 22세 이하였습니다. 10대도 있었고요.
23년 8월 랭킹은 어떨까요?
1위 신진서 23세, 2위 박정환 30세, 3위 변상일 26세, 4위 신민준 24세, 5위 김명훈 26세, 6위 안성준 32세, 7위 원성진 38세, 8위 강동윤 34세, 9위 김지석 34세, 10위 박건호 25세.
10대는 아무도 없고, 30대 이후가 5명이 됩니다. 25세를 에이징 커브로 본다면, 신진서 신민준 단 두 사람을 빼고는 모두 그 이후 나이입니다. 한눈에 봐도 ‘한국 바둑은 늙어간다’는 느낌을 줍니다.
23년 랭킹 10위 안에 든 30대 기사들은 이창호 이후 바둑 붐이 일었던 ‘90년대 바둑 교실 세대’입니다. 속되게 말하면, ‘바둑이 한창 좋았던 시절’의 막차 혹은 상투를 잡은 이들입니다.
아쉽지만 이것은 현실입니다. 바뀔 기미도 솔직히 말하면 보이지 않고요. 물론 삼성전자 등에서 “한국 바둑 발전을 위해 모든 프로 바둑 기사들에게 최저 생활 연봉 1억 원 이상을 매년 지급하겠다”고 한다면 바둑은 다시 한번 붐을 일으킬 겁니다. 가능한가요?
그러니, 너무 실망하지는 않으렵니다. 이게 현실이니까...
하긴, 이런 분야가 어디 한둘일까요. 그래서 진로 지도를 할 때 ‘해당 산업의 흐름’을 파악하는 게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겠지요. 10대 청소년이 아무리 똑똑해도, 그런 것까지 알 수는 없을 터이니까요.
뭐, 저 역시 신문사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80년대 최후반, 언론사 입사를 준비한 놈이니 무슨 변명을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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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3줄 요약좀
선생님이 보시기엔 미래지향적으로 메디컬쪽은 어떨까요? 저는 부끄럽지만 8번 수능을 도전하여 결국 메디컬이라는 열매를 따 내긴 했지만 막상 와서 보니 메디컬에서 조금은 부족한 점들도 많이 보이네요..ㅠㅠ
그래서 세무사 시험을 졸업 전에 준비해서 약대 졸업 시 약사면허증과 세무사자격증을 둘 다 가져보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늘 써주시는 글 정독하며 생각을 깊이 해봅니다 선생님의 고견에 감사드립니다
우선, 자신의 목표에 모든 것을 바친 귀하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서울대 의대를 갔든 서울대 약대를 갔든, 아니 독도대 의대를 갔든 독도대 약대를 갔든 자신의 목표에 자신을 바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메디컬의 미래를 어찌 보느냐는 질문에 답을 드릴 정도로 제가 대단한 사람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저, 귀하와 같이 고민해 볼 수는 있겠지만요.
저는 메디컬의 미래, 아니 더 직접적이고 속되게 말해서, '메디컬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른 그 어떤 분야와 비교해도 괜찮은 분야 아니냐'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 대답이 맞을지 틀릴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다만, 메디컬 중 '약학 분야와 약사는 조금 다른 것이 아닌가' 여렴풋이 생각합니다. 물론, 근거는 별로 없습니다. 제가 미래를 '익숙하게' 읽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요. 그냥 어느 빙충뱅이의 짧은 생각이라고만 받아주소서.
그리고...
약대를 다니시면서 세무사 시험을 보신다고 했는데...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 오신 귀하의 능력을 보았을 때 세무사 시험 자체를 통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느낍니다. 객관적으로 귀하보다 훨씬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분들도 세무사 시험은 붙으니까요.
한데, 약대를 다니면서 그것이 가능한가요?
제가 약대의 공부량을 정확히 몰라서요. 다만, 약학 공부와 세무사 공부는 분야가 완전하게 다른 것이어서, 과연 두 마리 토끼 잡기가 '약대 재학 중' 가능한지에 대해 현실적인 의문을 표하는 겁니다.
막말로, 자격증을 많이 가져서 나쁠 것이야 없겠지만, 현실적인 가능성도 생각해야 하니까요.
이 점은 약대 선배 님들에게 묻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실 속에서 항상 노력하시면서 최선을 찾으시려는 귀하의 의지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합니다.
ㅠㅠ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데 과찬입니다.
그냥 제가 살아왔던 지난 시간을 더듬어보면서 짧은 생각을 정리해 보았을 뿐입니다.
항상 건승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