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ito Ergo Sum [1105120] · MS 2021 (수정됨) · 쪽지

2023-04-17 21: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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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학에서 낚이지 않는 방법, 선지 거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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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실전적인 칼럼을 하나 써봤습니다.

수능 문학을 놓고 넓게 봤을 때는 오답 거르는 법이자, 헷갈릴 때 (또는 평가원에게 낚이려고 할 때) 떠올리면 나름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중간중간에 일반적인 학생들의 풀이와 비교하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A 대신 B가 제시되면 혼란에 빠진다.

지난 몇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비문학이든 문학이든 이 부분을 짚어주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 A 대신 B를 제시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수능 비문학 지문과 문학 선지 판단의 기조 자체가 웬만하면 흔히 이야기하는 '이항대립적 서술'을 메인으로 하기 때문에, 긍정/부정을 나누어 판단하라는 강의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은 전혀 틀린 게 아닙니다. 그러나 '이항대립적' 분석에 매료되어서 선지 판단에 혼란을 겪는 경우도 많죠. 

즉, 이 글은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하라는 것이 요지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A 대신 B라는 말을 이분법으로 받아들이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건 강의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는 게, 현장에서는 판단하기 간편한 쪽으로 사고가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긍정/부정 말고도 다른 것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하면 참 좋겠지만.. 굉장히 긴장되는 상황에서는 긍정과 부정을 대놓고 둘로 쪼개버리는 가장 명시적인 논리를 떠올리는 것도 사실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흔히 이야기하는 '큰 틀에서의 내용 일치'조차도 많은 학생들이 짚어내기 어려워 합니다.


다시 결론으로 돌아가서, A대신 ~A(not A)를 제시했을 때는 수월하게 걸러내지만 A 대신 B를 제시하면 그게 적절하지 않은 설명인지 판단하기 어려워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고는, "A는 당연히 A인데 그걸 B라고 설명해? 틀린 설명이네."가 되겠네요. 아직 느낌이 잘 안 오실 테니, 예시를 통해서 보겠습니다.




2022학년도 수능 23번의 4번 선지입니다.

나중에 보기 문제 전체를 아우르는 칼럼을 쓸 때 다시 쓰겠지만, 결국 이 문제에서 우리의 목표는 '부호가의 깊은 장막 안'과 연관된 단락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인간과 가까운 공간'이라는 것은 맞을 가능성이 높죠. 부호가 근처에 있다고 했으니.. 그리고 '적막함'이라는 정서를 찾을 수 있는지 봐야 할 겁니다.



본문을 보았을 때 특별히 부호가의 깊은 장막 안이라는 파트의 앞뒤에서 특별히 낚시하는 서술이 되어 있지 않으니 이건 맞네요. 그런데 적막함이라는 정서는?


귀함 - 천함의 대비되는 짝을 분명히 짚었다면 귀한 것은 보살핌 받는 존재이고, 천한 것은 버려지는 존재라고 파악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저 맥락에서는 차라리 굳이 말하자면 귀한 존재에게 '안정감 내지는 편안함'을 주는 것이지, '적막함'을 유발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따로 안정감과 적막함만 놓고 봤을 때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할 사람은 없죠.


하지만 이 문제는 2022수능 문학 중에서도 고난도로 꼽힙니다. 즉, 앞서 말했던 'A 대신 B'가 제시되었을 때 판단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저 구절을 두고 '안정감을 줄 수 없음을 드러내는군.'이라는 서술이 있었다면, 정답률이 굉장히 높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나왔다면 앞서 말한 대로 A 대신 ~A를 제시한 경우이기 때문에, "여기가 지금 안정감 느낀다는 얘기인데 뭘 안정감을 못 느껴."라는 사고 과정을 통해 쉽게 정답을 낼 만합니다. 


그런데 A와 아예 '관련도 없는' B를 줘 버리니 판단의 기준이 무너지고 본인도 모르게 사고 과정에서 비약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A도, ~A도 아닌 B를 줬다는 것은 이미 주제성 측면에서 아예 어긋나 있었다는 의미이므로 옳은 설명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 보기 칼럼을 쓰면서 '평가원 낚시 코드'라는 걸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명칭이야 뭐 교재 대부분이 평가원 코드라는 것을 사용하기 때문에 거기에 그냥 '낚시'라는 말만 넣은 거라고 말씀드렸었죠.

포인트는 "평가원이 이렇게 낚시를 했다!" 라는 것을 명확하게 밝히는 게 아니고. "평가원이라면 이런 식으로 사고하도록 유도했을 것이다."였습니다. 즉 실제로 그런 의도였는지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문제로 돌아가서, "부호가의 깊은 장막 안에 있다면, 혼자 있을 테니 쓸쓸하고 외로울 수 있겠다. 장막에 가려진 곳은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읽었다면 적절하게 보이는 선지입니다. 다시 말해 출제자는 위와 같이 생각하도록 유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게 바로 평가원 낚시 코드가 되는 것이겠죠.


하지만.. '장막 안'이 외부와 분리된 공간인 것은 확실히 맞지만, 저 단락에서 묻고 싶은 것은 외로움을 느끼냐 안 느끼냐가 아니었죠. 이 단락의 핵심은 귀하면 편하게 지내고, 천하면 버려진다(= 편하게 지낼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핵심으로 잡은 포인트가 다른 게 느껴지시나요?


이 경우에는 근거가 A와 ~A처럼 명시적으로 제시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사고가 아예 다른 범주로 옮겨가는 바람에 답을 쉽게 고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음 문제로 조금 더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2023학년도 수능 국어 21번의 5번 선지입니다. 23학년도 수능 문학이 이전에 비해 다소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대부분 쉽게 풀었을 겁니다.



정답 논리를 보자면.. 너무 간단하죠. 본문을 참고할 때 '소리를 지르며 끌어안는 것'과 '눈물이 다하자 피가 흘러내리는 것' 두 가지 모두 재회의 기쁨이 극대화되어 표출된 장면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문제를 풀 때 아무 생각 없이 선지를 쭉 훑어내리고, 5번이 정답일 거 같아서 5번과 관련된 부분을 보고 정답을 골랐습니다. (지금 시기에는 함부로 활용하면 안 되긴 하지만, 이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극단적 시간 단축 - 문학편' 칼럼을 참고해보시면 될 듯합니다.)


작품의 내용을 몰라도, 눈물을 흘리다가 피가 되었다는 것은 피눈물을 흘리는 것을 의미할 겁니다. 물론 저 상황을 넓게 보면 (보통 방식대로 보면), 제가 종종 설명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공격하는 오답 논리'를 활용해 "피눈물을 흘린다는 건 당연히 부정적인 상황이겠구나."라는 생각을 유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게 평가원 낚시 코드가 되겠네요. 일반적인 생각을 공격한다는 건 다음에 다시 자세히 쓰겠습니다.


정답 논리에서 봤듯, 부정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다하고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틀린 선지입니다.


그러나 그 논리를 찾기 이전에도, 피눈물은 증오, 복수심, 적개심 등으로 연결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찬란한 피눈물.. 같은 말은 굉장히 어색합니다. 그래서 제가 저 선지까지 훑어내렸을 때 한 생각은, "피눈물이라면 적개심이 나오면 나왔지 불안감으로 해석하기는 매우 어렵다."였습니다. 그렇다면 늘 말씀드렸던 것처럼 지문으로 돌아가서 먼저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죠. 냅다 찍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시간이 적다면 시도해볼 수야 있겠지만, 명시적 근거가 기억나지 않으면 돌아가서 확인해보아야 합니다.


이 문제에서는 그것보다도 훨씬 쉬운 논리로, 아예 그냥 기쁨과 불안감이라는 반대되는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설명하기 좋을 듯해서 가져와봤습니다. 


좀 더 부연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적개심과 불안감은 모두 부정의 범주에 속합니다. 그렇지만 적개심을 불안감과 동의어로 놓을 수는 없습니다. 뭔가 해결법을 약간 스포한 느낌인데, 예를 들어 불안하면 안절부절 못하고 몸을 떤다든가 하는 등의 묘사가 나와야지 불안해서 피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높은 확률로 적절하지 않은 진술일 겁니다.


저 소설이 아닌 다른 작품을 주고, 제가 말한 상황이 연출되었다면 많은 학생들이 현장에서 이를 쉽사리 가려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고의 범주를 조절하도록 의식적으로 훈련하기

문제 사진을 찾지는 못했지만 또 다른 사례로, 주인공이 무언가를 다짐하는 장면에서 '누군가를 믿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라는 식으로 선지가 제시된 적이 있습니다.


다짐이라는 것이 자신을 믿는 것이라면 다짐과 믿음은 그나마 비슷한 이야기겠지만, 타인을 믿는 것이라면 다짐과 믿음은 아예 다른 이야기입니다. 즉, A 대신 B를 제시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짐과 믿음은 '희망'의 뉘앙스, 즉 긍정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읽다가 소위 말하는 비약을 해버리면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검토를 할 때도 발견하기 어렵겠죠.


당장에 다짐과 믿음이 같은 건가요? 라고 물으면 모두가 아니라고 답하겠지만 실제로 문제를 풀다 보면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출제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을 정확히 캐치해서 매력적인 오답을 만드려고 하는 것도 있을 겁니다.



맨 처음에 이야기했던, 긍정/부정의 이항대립적 분석을 논하는 게 잘못된 걸까요? 아닙니다. (비문학도 그렇지만) 특히 문학은 대체로 긍정/부정의 큰 틀에서의 내용 일치만 따져도 풀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고난도 문제를 만났을 때, 즉 답이 안 보인다거나 헷갈리는 문제를 만났을 때는 사고의 범주를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까 했던 설명을 이어가면, 적개심과 불안감은 모두 부정의 범주에 속하지만 그 범위를 좁혀서 개별 단어끼리 비교하면 유사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아까 언급했던 믿음과 다짐 역시 같은 이야기겠죠.



+ 제가 해석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고 '해석할 수 없다'라고 썼는데 이 부분도 문학 선지 판단에 도움이 될 듯합니다. 문학에서 흔히 말하는 감상, 공감은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수능은 전국의 수험생을 전부 테스트해야 하는데 해석이 갈리는 부분을 내면 출제 오류로 이어질 겁니다. 그래서 평가원은 '절대로 답이 될 수 없는 선지'를 넣어 적절하지 않은 선지를 구성하고, '맞는 말이어야만 하는' 선지를 넣어 적절한 선지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모 입시 사이트에서 어떤 분께서 올리신 국어 관련 만화를 본 적 있었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거기에 이런 비슷한 내용이 나와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방 안에서 먼저 떠나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화자가 제시된다면, 그 화자의 정서가 기쁨일 수 있겠는가? 였는데, 


당연히 말이 안 됩니다. 


화자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에 대해 질문해본다면, 일반적으로는 '슬픔'이라는 대답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핵심은,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기쁨을 느꼈을 리는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저런 상황을 두고, 수능 문학에서는 '화자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와 같은 뉘앙스로 적절하지 않은 선지를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을 담은 만화였죠. 제 생각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느껴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네요.



어떻게 비유가 잘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리하자면 위에 설명했던 내용에 더해 '절대로 답이 될 수 없는 선지'가 뭘 의미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간만에 긴 칼럼 중에서 문학 관련 칼럼을 써봤는데,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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