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효율론
갑자기 오늘 영감을 받고 쓰는 글인데
제가 지금까지 공부를 해오며 느낀 점을 적어 봅니다.
딱히 이론적/과학적 근거는 없으니 적당히 비판적인 자세로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공부도 다른 모든 일들과 마찬가지로 노력과 성취 사이에 '효율'이라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공부는 내 주어진 시간을 써서, 그 시간에 무엇에 대해 노력할지 정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 과정보다 중요한 것은 '성취'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결과입니다.
대부분의 공부는 위와 같은 그래프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A 구간입니다.
A 구간은 공부를 시작하는 단계이면서, 노력 대비 성취 효율이 가장 좋은 구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영어 공부로 따지자면 기초 단어를 외우고, 기본 영문법을 공부하는 단계이며
국어로 따지면 문학 개념어를 익히고, 문법 개념을 공부하는 단계
탐구로 따지면 개념 인강을 듣는 단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수능 영어, 국어, 사회탐구를 예로 들자면
A 구간을 마무리할 때쯤 3~4등급 정도의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예전에 한참 과외를 많이 할 때
수능을 두어달 남기고 6~7등급의 학생을 가르치게 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 목표는 '어떻게든 A구간을 넘겨서 B구간에 도달하게 하자'였습니다.
만약 공부를 아예 놓고 있다가 수능을 앞두고 공부를 시작한 학생이 있다면
A구간을 넘기는 것을 목표로 공부해야 합니다.
A구간을 넘기는 데에는 딱히 요령이나 방법 같은 것이 없습니다.
보통은 암기의 비중이 제일 높은 단계이며
이때는 그냥 우직하게 앉아서 열심히 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간혹 노베이스 학생들이 '영어 단어 잘 외우는 팁 없나요?'라는 질문을 하는데
그런건 없고 그냥 많이 읽고 많이 쓰면서 외워야 합니다.
A구간을 힘들게 넘긴다고 해서 명문대를 갈 성적을 낸다거나
특정 분야에서 특별한 성취를 낼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만,
저는 A구간을 넘기느냐 넘기지 못하느냐가 꽤나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은유와 반어의 의미를 알고 그 예시를 들 수 있으며
확률과 통계의 기본 개념을 알고 있고
열역학 제1법칙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어찌보면 대단한 일은 아닐지 모르나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중고등학교 공교육은 최대 다수의 학생들이 A 구간을 넘기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박학다식하다면
그 사람은 여러 분야에서 A구간을 넘긴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B 구간은 A 구간에서 알게 된 개념을 적용하며 실력을 키우는 단계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장은 A 구간보다 적게 보일 수 있으나
자신이 알게 된 것을 어느정도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국어 공부로 따지자면 글을 많이 읽고, 개념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문제에 적용해보는 단계입니다.
B 구간은 수능 등급으로 치면 대략 2~3등급 정도의 성취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은 C 구간입니다.
저는 공부의 진정한 묘미는 C 구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념도 공부하고, 적용하는 연습도 다 마무리하면(=B 구간을 지나오면)
쉽게 점수나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성적 상승에 있어서 정체기가 오게 되는 것이죠.
이때는 공부를 해도 느는 것 같지가 않고, 내가 뭘 해야 할지도 막막합니다.
'인강 커리도 열심히 따라왔고 기출도 꽤 풀어봤는데 왜 점수가 안 나오지? 시간이 왜 안 줄지?'
이런 고민이 생기는 시기요.
C구간에서는 학생 스스로 무언가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계단식의 성취를 보이는 곳이라,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아무리 공부를 해도 실력이 잘 늘지 않죠.
이러한 깨달음은 남들이 100% 말로 알려줄 수는 없는 것들인데
혼자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스스로 뭔가 솔루션을 만들고, 자신만의 원칙을 설정해야 하는 단계입니다.
이 구간에서는 한 번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실력이 크게 상승합니다.
개인적으로 뛰어난 선생님의 역할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이 C구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수 개념 등을 알고 있는 학생을 상대로
그 학생이 개념 이상의 무언가를 깨우칠 수 있도록 하는 영감을 주는 선생님이죠.
수학에서는 현우진 선생님 뉴런이 이런 강의라고 생각하며
제 국어 교재 '만점의 생각'도 C구간을 넘기는 것을 돕기 위한 교재로 기획했습니다.
C구간은 제대로 된 공부 방법을 찾지 못하거나, 학생이 스스로 계단을 올라갈 역량이 없다면
혼자 힘으로는 아무리 공부해도 만년 2~3등급에 머물 가능성이 있습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절실한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C구간의 후반부쯤에 온다면 수능에서는 1등급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대망의 D구간입니다.
D구간은 이전의 어떤 단계보다도 효율이 떨어지는 구간입니다.
노력하면 실력이 늘긴 느는데 그게 눈에 보일 정도는 아닙니다.
C구간을 넘겼다는 것 자체가 공부에 필요한 개념, 깨달음 등을 충분히 얻었다는 것인데
여기서 더한 성취를 내기는 몹시 힘든 일입니다.
사실 오늘 글을 쓰게 된 이유는 D구간에 대한 생각이 문득 들어서였습니다.
저는 공부에 효율을 몹시 중시하는 사람이고
고3때 수능을 준비할 때도 '모든 과목에서 C 구간에 도달하기'를 목표로 했습니다.
제가 볼 때는 D구간이 효율이 몹시 떨어지기 때문에, D구간에서 괜히 허우적대지 말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C구간 후반부에 도달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 전교 1등이 있었는데
그 친구랑 독서실에서 공부 얘기를 하다가
제가 '아 이거는 공부해도 효율이 안 나오는 부분이니까 차라리 그거 좀 덜하고 이거 하는게 나을 거 같음'
뭐 요런 식의 얘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 왈
'공부에 효율을 따져?'
이러더군요...
모든 공부에 있어서 효율을 따지던 저에게는 꽤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친구는 상당히 효율이 낮아보이는 방식으로 저보다 훨씬 많은 시간동안 공부를 하는 친구였는데
결국 그 친구는 자신이 가장 가고 싶던 서울대의 인기과에 진학했고
저는 적당한 성적을 받고 연세대에 진학했습니다.
얘기가 좀 샌 것 같기는 한데,
저 친구 얘기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깨달음은 '어떤 분야든 최상위에 도달한 사람들은 효율을 생각하지 않고 노력한다'였습니다.
결국 A~C 구간까지는 효율적으로 통과하는 것이 중요하고
현실적으로 대다수의 학생들은 수능으로 따지면 1등급 중반 정도의 성적을 거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
가령 수능에서 만점을 받는다거나, 저명한 교수가 된다거나, 뛰어난 작가가 된다거나 하는 일들은
효율을 생각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들인 것 같습니다.
저런 사람들은 D구간의 중후반에 도달한 사람들이고
그 정도의 성취를 얻으려면 공부가 취미가 되고 여가가 되는 수준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D구간의 초반에 있는 사람과 D구간의 중반에 있는 사람을 비교하면
단기적으로는 큰 차이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D구간의 중반에 있더라도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더 못할 수도 있는 것이고,
D구간의 초반에 있더라도 운이 좀 따라준다면 더 잘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런데 장기로 가게 되면 노력의 차이는 절대 뒤집히지 않습니다.
D구간의 초반에 있는 사람과 D구간의 중반에 있는 사람이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그 성과의 차이는 누가 보더라도 눈에 확연히 드러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저도 수능 공부든 대학 공부든 최상위권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사람이지만
(수능 국어에 있어서는 최상위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르비는 상위권 학생들이 많은 커뮤니티이고
사회에서 최상위의 성취를 내고자 하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하여
제가 얻은 작은 깨달음을 공유해봅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수능망치니 힘들다...
-
1. 고려대학교 2. 입 잘텀 3. 오르비 평균 외모 이정도면 ㅁㅌㅊ 인가요?...
-
모르겟음요 코로나때중2라니
-
뭔소린지 모르겟음뇨
-
수학,영어 잘하는 애 뽑는 질문,공부상담,채점등 알바 보조로 문서도다뤄야하는데...
-
ㅈㄴ이쁜 사람 있길래 나이가 궁금하네
-
미적 6모 9모 수능 다 3등급인데 아이디어부터 시작할까용
-
나이먹고 대학가면 늙고 병든 다크템플러가 될수도 돈많은 존잘 연상 남친이될수도...
-
전부는 아니고, 오르비에 올렸던거만 정리해서 다시 올립니다. 6월 88, 9월...
-
서울대식 411 7
내신은 AA아니면 BB같은데 설약/ 설높공 가능한가요?
-
장수생 대학생활 팁 25
다른 과 행사는 상관없는데 MT는 애들 노는 자리에 눈치없이 끼지말고 알잘딱...
-
전 세계적 숏이 필요한 시점
-
즐겁구만
-
의자 추천 7
집 ㅣ에서 쓰는 의자가 너무 불편해서 바꾸려하는데 추천 한번씩 해주고가셔요 회장님 의자 별론가염?
-
1선택 시간에 2선택 모르고 마킹을 했고 시간이 충분히 남아서 오엠알 교체 요청을...
-
콜라 썰어먹기
-
옛날 그 리듬농구님이신가요? 와 진짜 딱 10년 전쯤에 그 분 모의고사 풀었었던 기억이 있는데 ㅋㅋ
-
이명학 션티 0
둘중에 누가 나을까여
-
쵸비라인전강캐라 탑가도 잘할수 있고 쵸페 갈드컵도 안열려서 누이좋고 매부좋음
-
제2외는 4 한약수 or 서울대 가능할까...?
-
하지만난널영원히사랑할거야물1아언제나함께하자너가멸망하더라도같이가는거야마치타이타닉
-
사촌동생이 영어 사실상 읽을줄만 알고, 단어나 문법은 잘 모르는 노베이스에...
-
백분위 국어(언매) - 92 수학(미적) - 88 영어 - 85 생1 - 49 지1...
-
안녕하세요, 03년생 올해 수능을 치른 사람입니다. 핫게에 26살 과고 준비하셨던...
-
쌍윤황분들 컴컴 8
25수능 쌍윤 둘다 2등급인데 지금 뭐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개념 강의를 다시...
-
시립대 가능함? 11
백분위 89 94 1 4컷 4컷 안 되나...
-
통합수능의수혜자 3
국못수잘영못 ㄹㅇㅋㅋ
-
3번에 첫째항은 왜 준 거야 ㅅㅂ 얘 때문에 내가 문제 잘못풀었나 하면서 남들...
-
재수 질문 3
관독 다닐 예정이거든요 단과듣거나 라이브 껴서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집에 있으면...
-
현장감 1
수능은 실전훈련이80퍼의 공부량을 차지해야하는듯. 특히과탐. 물리 지금보니까...
-
실내흡연 6
하지말아다오..전담이라도 조심좀 해다오 불난줄 알았네 증말
-
올해 실패하고 26수능 준비하려고 합니다 화2하려고 하는데 컨틴츠를 잘 모르겠어서…...
-
수학 만표 144이상으로 뜰 시 20명 1000덕 34
2주 뒤에 까보자고 댓글 '기원합니다' ㄱㄱ
-
닥후임?
-
2주 뒤에 까보자고 댓글 '기원합니다' ㄱ
-
시부럴
-
통합사회, 통합과학 문제집은 어느 출판사꺼가 좋나요? 2
보통 과학하면 오즈 문제집을 많이 추천하잖아요 그런것처럼 통사통과도 그런게...
-
수분감 강의드랍 3
수분감 강의랑 해설지랑 차이점이 뭐에요? 그냥 해설지랑 똑같으면 드랍하려구요 알려주세요!
-
제발 멈춰주세요
-
알바 1
대학교 가서 친구 많이 사귀고 연애도 하고 싶은데 말도 잘 못 걸고 내향적이라서...
-
성대 논술 0
성대 논술 오전 공학계열 작년에 비해 많이 쉬웟음? 컷 얼마정도 일거같나요
-
현역때는 그냥 놀고 공부 하나도 안 해서 55455가 나왔습니다. 화작 확통 정법...
-
보통 마더텅이 무난한가
-
원래 독서 가 나 지문이 독서중 마지막 아닌가요? 가끔 앞에 나오기도 하나요??
-
가채점표도 쓰는 연습 해야할듯..
-
교차 노리고 있는데 왜 상경이 어문보다 퍼센트가 높은 거지..
-
3모 654에서 6모 233 띄운거면 그래도 가능성 있는거 아닌가 정신과 치료 받고...
-
전 에스컬레이드랑 서킷이에요 하나씩 추천해주셔요
실제로 정통 무협지의 플롯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ㅎㅎ
캬..
작년 수능을 망치고 뭐가 문제인지 계속 생각을 해봤는데 제가 글 읽는 속도가 빨라서 좀 얕은? 문제는 그냥 후다닥 풀 수 있어서 그동안 국어를 잘한다고 착각했던 것 같아요
피램 문학이랑 만점의 생각 보면서 정말 최대한 깊은 사고를 하면서 공부하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ㅎㅎ 올해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파이팅입니다!! 올해는 꼭 결과에 만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생님과 제가 주 활동 시간이 겹쳐서/선생님과 제가 보는 글의 종류가 비슷해서, 즉 취향이 비슷해서 선생님께서 제 댓글을 매번 보시는 것일 뿐입니다.
아무튼 오해에요 오해…ㅠㅠㅜ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좋은 글 감사드려요 :)
학생때는 공감이 잘 안갔는데 대학에서 공부하다보니 더욱 체감이 되네요
좋은글 감삼돠 공감이 많이되네요
아 ㅋㅋ 효율 안 따졌으면 메쟈의 갔을 텐데 ㅠㅠ
공감누르고갑니다
ㄱㅁ
제 생각을 그대로 ~~~~ 넘 감격했습니다
선생님 기출분석에 대한 글은 언제 올려주시나요?
좋은 글인데요, 저도 공부를 하고 과외를 하는 입장에서 D구간에서도 효율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예시인 친구분도 정말 훌륭한 공부법이지만, 완벽한 상황을 가정할 수 없는 입시에서는 D구간에서도 효율적인 공부가 결과를 바꾼다고 봅니다. 그게 정말 최상위권이여도요...
그것말곤 저도 동의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 이 글 출처 남기고 퍼가도 되나요?
맞아요 D구간... 사실 저는 D구간 초입에서 수능을 봤다고 생각하는데 운이 좋아서 시험을 잘 봤네요...
D구간 끝까지 도달하고자 파는 사람들은 아마 진짜 전문가들이겠죠..!!
그런데 사실 저는 그냥 D구간 초반에서 멈추는 게 좋은 것 같기는 합니다 ㅋㅋㅋ
그 시간에 다른 분야를 D구간 초반까지 키우는게 성공에 더 도움이 될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