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외 지문이 어려운 이과, 과학 지문이 어려운 문과
이과 학생은 철학 지문을 어려워합니다. 물리적 실제를 다룬 것이 아니기 때문일까요?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은 관념적입니다. 하지만 물리학 역시 실제의 현상과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중력법칙처럼 법칙 자체는 추상적인 법칙을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과 학생이 관념적인 글을 힘들어한다고 속단하기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리학적 개념인 중력, 관성 등은 그런 규칙을 따르는 물리적 현상을 떠올리면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물리적 현상의 예를 떠올리지 못한다면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도 있다는 것을 알아 주세요) 하지만 철학에서 추상적, 관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들은 그것들을 보여주는 어떤 실제 현상이나 예로써 간단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언어로 표현된 개념의 경계를 서로 이어가면서 개념의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지요.
반대로 문과 학생이 과학 지문을 어려워하는 것은 위에서 이과 학생들이 쉽게 할 수 있는, 물리적 관념과 물리적 현상을 결합하면서 글쓴이가 언급하고 있는 개념이나 현상의 상을 마음 속에 그려내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또한 그렇게 파악한 상을 문제 해결에 적용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과학 지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간추론과 같은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공간추론능력이란...공간에서 위치, 이동, 접촉, 배열 등의 상황을 추론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하겠습니다. 아래 내용에서 배열에 관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공간추론능력처럼 한 개념(원리)가 있다면 어떤 조건이 어떤 결과를 필연적으로 도출한다는 추론 능력을 필요로합니다. 이런 읽기와 사고에 익숙해지다보니 이과 학생은 서로 겹칠 수 없지만 쌓을 수 있는 레고블록으로 어떤 형태를 만들어 내기에 능해집니다. 그래서 네 개의 레고블록 A, B, C, D를 AB, CD로 붙인 다음 B와 C를 붙이면 맨 위의 것은 A이고 맨 아래 것은 D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이해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적 개념은 색을 겹쳐 칠하여 완성하는 회화와 같이 언어가 연상시키는 개념들을 서로 합하고 구분하는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개념은 명확한 명제를 통해 주어지지 않고, 그렇더라도 그 의미를 다른 내용과 연합하여 파악해야 합니다.
아래 문장을 하나씩 읽으면서(한꺼번에x) 네 사람의 위치를 마음속에 그려보세요.
1. 명수는 재석 뒤에 있다
2. 명수는 홍철의 왼쪽에 있다
3. 형돈은 홍철의 오른쪽에 있다
위의 문장들을 하나씩 일어가면서 네 사람의 위치를 점차적으로 마음속에 그려서 결국에는 명확하게 배열하는 상을 그려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1~3은 독자가 네 사람이 공간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가에 관한 상을 그리도록 유도합니다. 재석, 명수, 홍철, 형돈의 위치는 모두 네 사람이 상대적으로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말하는 ‘상대적 지식’입니다. 상대적 지식은 또 다른 상대적 지식을 낳습니다(추론).
명수는 재석 뒤에 있다 ↔ 재석은 명수 앞에 있다
명수는 홍철의 왼쪽에 있다 ↔ 홍철은 명수 오른쪽에 있다
⇒ 재석의 뒤의 오른쪽에 홍철이 있다 ⇒ 재석의 뒤의 오른쪽에 홍철이 있다
실제 글 읽기에서는 공간적인 위치뿐만 아니라 정치적 입장이 다른 몇 사람의 주장, 이론상 관점이 다른 학설 사이의 관계나 소비자 사이에서 인기도가 다른 제품들의 위상 등을 다루는 글을 만나게 됩니다. 과학 지문을 잘 읽는 학생은 과학적 개념으로부터 물리적, 화학적 성질에 관한 추론이 능한 반면 인문학의 언어로부터 추상적 개념 자체를 파악하는 개념 추론을 어려워합니다. 인문학 지문을 잘 읽는 학생은 반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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