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 [383625] · MS 2011 · 쪽지

2014-05-22 12: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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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강 강사를 통해 알아보는 우리 사회와 학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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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학벌이 주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정도다. 특히 직업군에 따라 그 편차는 꽤나 심한 편인데, 가령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의 경우 클라이언트가 서비스의 질을 판단하는 데 있어 서비스 제공자의 학벌은 꽤나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해당 직업군에서의 학벌의 중요성은 꽤나 크다고 할 수 있다.


교육 서비스업인 사교육 시장에서도 강사의 학벌은 꽤나 중요한 평가 요소이다. 더구나 고교 사교육 시장에서야 그 중요성을 말해 무엇하랴. 고교생이 사교육을 이용하는 유일한 이유는 대학에 잘 가기 위함이니, 사교육 서비스 제공자의 학벌이 중요한 건 실로 당연한 이치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학벌 카르텔의 정점에 서 있는 서울대와 연고대, 이른바 SKY의 위력은 사교육 시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서울대 출신 강사는 자신이 서울대 출신임을 적극적으로 어필한다. 우선 프로필의 첫 줄에는 어김없이 '서울대학교 XX학과 졸'이란 문구가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다(재밌는 건 강사가 가르치는 과목과 상관없는 전공 출신이면 아예 학과는 빼 버리고 학교만 기록한다는 점이다. ex:김찬휘).

어떤 강사들은 아예 'Veritas Lux Mea'가 적힌 서울대 로고를 홈페이지에 노골적으로 갖다 붙이고, 또 강의 OT에서 홍보하기도 한다. 영어의 이지민, 생명과학의 박선오, 최정윤, 지구과학의 김지혁 등이 그 예다. "나는 서울대를 나왔다. 그리고 그 서울대에서 너희가 배우는 과목을 전공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잘 가르치겠는가? 너희는 나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 서울대 출신 대학 강사들의 레퍼토리다.

연고대로 내려가면 이렇듯 적극적으로 "나 연고대 출신이야"하는 경우는 없다. 프리미엄은 어디까지나 서울대 한 곳에 국한된다. 대신 연고대 출신 강사들은 프로필 첫 줄에 학력을 빼먹진 않는다. 이명학은 연세대 영문학과 출신이고, 전준홍은 연세대 수학과 출신이다. 수험생들은 비교적 쉽게 강사들의 출신 대학을 알 수 있다. 어디까지나 연고대까지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서성한부터는 안타깝게도 학력을 내세우지 않는다. 여기서부턴 프로필 첫 줄에 학력 대신 경력부터 채워넣는 경우가 많다. 대학원을 SKY로 가서 학력세탁을 한 경우 대학원 학력부터 기재한다. 강사의 프로필 첫 줄에 학부가 아닌 대학원이 기재되어 있는 경우, 100% 낮은 학벌을 커버하기 위함이다. 만약 학부와 대학원이 모두 SKY 레벨이라면 둘 다 기재하고, 같은 학교라면 학부를 먼저 기재한 다음 '동대학원'이란 표현을 덧붙인다. 결코 대학원 단독 플레이를 하진 않는다.

성균관대 출신 김기훈은 교재 프로필 첫 줄이 '쎄듀 대표이사'로 시작한다. 한양대 출신 백호도 나서서 광고하지 않는다. 게다가 전공은 쓰여 있지도 않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아마 백호의 전공은 생물교육학이 아닐 것이다.

최근 마이맥에서 각광받고 있는 국어 전형태의 경우 동국대 국어교육학과 출신이다. 마이맥에서 서울대 출신 김동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박광일 역시 동국대 국어교육학과 출신이다. 그러나 전형태의 교재에는 출신 학교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대신 대치동의 출강학원 목록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이 학벌을 굳이 나서서 알리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험생, 즉 고객들이 강사를 선택할 때 따지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강사의 학벌이기 때문이다. 입소문, 강의 전달력, 교재 퀄리티 등등... 강사와 강의를 선택하는 데는 분명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그 중 학벌도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더구나 SKY 바로 밑도 아닌, 건동홍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동국대라면... "뭐야, 동국대 나와서 누굴 가르치겠다고?"와 같은 반응은 충분히 예상될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정말 학벌은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그 학벌을 쟁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또한 재수, 삼수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희생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열거한 非SKY 출신 강사들을 다시 한 번 주목해서 읽어보자. 김기훈, 백호, 박광일, 전형태...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일가를 이루고 1타 소리를 듣는 강사들이다(전형태 제외). 컨텐츠를 개발해서 수험생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결국엔 서울대, 연고대 출신 강사들과 맞붙어 그들과 대등한, 혹은 우위를 점한 사람들이다.

분명 시장에 진입하는 데 SKY 출신이 유리한 건 맞다. 이후의 광고와 홍보에서도 서울대라는 프리미엄이 주는 영향력은 꽤나 크다. 그러나 그것이 실력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면 소비자는 곧장 발걸음을 딴 데로 돌리고 만다. 반면 학벌이 SKY 출신에 비해 달리더라도 자신의 영역을 확실하게 개척해나가고 실력을 쌓는다면 어느 순간부터 학벌은 더 이상 족쇄가 되지 않는다. 백호가 한양대 출신이라서 듣지 않겠다는 수험생, 박광일이 동국대 출신이라도 듣기 싫다는 수험생을, 오르비에서 본 적이 없다.


결국 학벌이 꽤나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사교육 시장에서도 본질적인 것은 강사 개인의 '실력'이다. 그렇다면 다른 분야에서는 어떻겠는가? 실력이 더 중요해짐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취업 당시에는 분명 학벌의 영향력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이후,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위로, 위로 올라가는 데 학벌은 고작해야 거들어주는 왼손 역할에도 미치지 못한다.

물론 수험생인 지금, 우리는 당연히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대학생이 되고 난 이후에는, 대학을 한 급간 올리기 위해 1년을 더 하느냐, 아니면 다른 쪽으로 노력하느냐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사실 가장 좋은 것은 수능이 끝나고 대학 합격 발표가 나면 당분간은 오르비에 발길을 끊는 것이다. 이곳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학벌 만능주의 공간인 지라,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끊임없는 회의에 시달리게 된다(운영자님 죄송... ㅠㅠ).


덧붙여,

잠깐 다른 시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공무원 시험 과목 중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과목이 있다. 바로 행정학이다. 100% 암기과목인데다 양은 더럽게 많고 휘발성 또한 엄청나서 수험생 모두가 애를 먹는 과목이다. 그 행정학 강사 중 1타(학원별이 아니라 그냥 노량진 수험가 통합)로 불리는 강사 중 한 명이 바로 위계점이란 사람이다(다른 한 명은 신용한. 신용한은 9급에서, 위계점은 7급에서 1타로 통한다). 이 사람은 7급 행정학 시장을 꽉 잡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 출신 학교가 무려 방송통신대다. 방통대 나와서 강의한다. 그럼에도 이 사람 강의는 언제나 마감된다. 수험생 누구도 그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또 한 명의 강사가 있다. 7급 한국사를 꽉 잡고 있는 부동의 1타 김윤수가 그 주인공이다. 공무원 시험에서 7급과 9급의 차이는 꽤나 크다. 분량도 분량이고, 문제의 깊이도 큰 차이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어렵다는 7급 한국사에서 김윤수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7급 한국사에서 고득점을 하려면 그의 강의를 듣든지, 그의 문제집을 풀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는 게 노량진 학원가의 정설이다. 그런데 이 김윤수는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 하면 충남대 출신이다.

대한민국의 경제학 시험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강사 둘이 있다. 바로 정병열과 김판기다. 이들은 고시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경제학 시험 시장을 뚝 잘라 차지하고 있다. CPA부터 감정평가사, 보험계리사, 7급 공무원까지... 객관식 경제학이란 과목이 존재하는 어떤 시험이든지 이 둘의 이름은 꼭 거론된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 하나. 김판기의 강의 교재가 바로 정병열의 '경제학 연습'이란 책이란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한국사로 치면 강민성이 고종훈 교재로 강의를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고, 한석원이 신승범 수학적 해석 교재로 알파테크닉을 가르치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수능 시장에선 상상하기 어렵지만 기본서가 평균 1천 페이지에 달하는 고시, 공무원 시험 시장에서 많은 강사들은 자신의 교재가 아닌, 타 강사의 교재로 강의를 한다. 정병열의 경제학 기본서는 워낙 퀄리티가 뛰어나서 꾸준히 타 경제학 강사들의 교재로 쓰이고 있다)

1타 강사로서 꽤나 수치스러운 일일 텐데도 김판기는 정병열 교재로 강의한다. 전해 듣기로 김판기는 "아무리 노력해도 정병열 책보다 잘 쓸 자신이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재밌는 사실 둘. 김판기는 연세대 경제학과, 정병열은 서강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대학에 들어갔을 땐 그 시점에서 이미 인생의 승패가 결정된 것처럼 보이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이란 고작 대학 간판 하나로 결정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 더구나 오르비의 수험생들이 획득한 결실이라면 이름 들으면 누가 알 만한, 어지간한 레벨의 대학일 터, 그 이후부터는 학벌이 아니라 오로지 본인이 할 탓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P.S - 위에서 한 이야기의 유일한 반례가 있다. 바로 로스쿨이다. 로스쿨에 대해서만큼은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죽어도, 죽어도, 죽어도 SKY를 가라. 서성한도 필요없다. 꼭 SKY에 가라. 서울대 가면 아주 좋고, 연고대도 훌륭하다. 무조건, 무조건, 무조건 SKY에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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