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1) 시는 해석하려고 하지 마라
시는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우선 느껴라.
느낌은 대체로 모호하고 달콤하고 어딘가 아쉽고, 또 꺼림직하다.
프랑스의 학자 Gaston Bachelard의 말이고, 한국 문학계에는 김현 교수님을 통해 많이 전파되었습니다.
수능 문학을 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1. 일단 전반적인 '느낌'을 얻고,
2. 주요 시어들의 관계를 파악한 뒤,
3. 선지를 읽으면서 정오를 판단하면 됩니다.
수능에 나오는 현대시들은, 쉽게 쓰여서 해석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정확한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일단 분위기를 느낍시다.
화자가 어떤 대상 혹은 상황을 긍정적으로 판단하는지/부정적으로 판단하는지 먼저 봅시다.
기출 지문들을 조금 볼까요?
한 줄의 시(詩)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 남아
귀중한 사료(史料)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詩人)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김광규, 「묘비명(墓碑銘)」-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인이 '묘비'에 대해 반어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은근히 비판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야 문제에 대한 접근이 가능합니다.
한강물 얼고, 눈이 내린 날
강물에 붙들린 배들을 구경하러 나갔다.
훈련받나봐, 아니야 발등까지 딱딱하게 얼었대.
우리는 강물 위에 서서 일렬로 늘어선 배들을
비웃느라 시시덕거렸다.
한강물 흐르지 못해 눈이 덮은 날
강물 위로 빙그르르, 빙그르르.
웃음을 참지 못해 나뒹굴며, 우리는
보았다. 얼어붙은 하늘 사이로 붙박힌 말들을.
언 강물과 언 하늘이 맞붙은 사이로
저어가지 못하는 배들이 나란히
날아가지 못하는 말들이 나란히
숨죽이고 있는 것을 비웃으며, 우리는
빙그르르. 올 겨울 몹시 춥고 얼음이 꽝꽝꽝 얼고.
-김혜순, 「한강물 얼고, 눈이 내린 날」- (2021학년도 9월 모의평가)
그런데 위의 시 같은 경우에는 해석이 어려울 뿐 아니라 느낌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작품이 나오는 경우, 평가원은 개념들 간의 관계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요소를 출제합니다.
(적절하지 않은 선지) ② ‘아니야’는 배가 훈련을 받고 있다는 추측을 부정하는 표현으로, 배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배의 내부적 원인에서 기인하고 있음이 이를 통해 드러난다.
배가 움직일 수 없는 것은 강이 얼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배의 내부적 원인(배가 고장났다거나, 배에 구멍이 뚫렸다거나)이 아니라, 외부적 원인으로 인해 움직일 수 없는 것이죠.
시를 이해를 못해도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이해(강이 얼었음->강이 흐르지 못함->배가 저어가지 못함)가 있으면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느낌이 안 오면, 개념들 간의 관계를 파악하면 됩니다.
초라한 경력을 육지에 막은 다음
주름 잡히는 연륜마저 끊어버리고
나도 또한 불꽃처럼 열렬히 살리라
-김기림, 「연륜」- (2022학년도 6월 모의평가)
(적절하지 않은 선지) ② (가)에서 ‘불꽃’을 긍정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것은, ‘주름 잡히는 연륜’에 결핍되어 있는 속성을 끊을 수 있는 수단이라는 의미로 재해석한 것이겠군.
시에서는 '연륜을 끊고' -> '불꽃처럼 열렬히 삶'을 얘기합니다.
'연륜을 끊음'이라는 행위가 '불꽃처럼 열렬히 삶'의 수단인 것이죠.
따라서, 수단과 목적, 선후관계가 뒤바뀌었으므로 2번 선지는 옳지 않습니다.
굉장히 객관적이죠??
보통, 수능에서는 현대시가 쉬울수록 내용 이해를 더 물어보고
현대시가 어려울수록 이해보다는 '객관적인 사실 판단'을 더 요구합니다.
쉬운 경우에는 '느낌'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어려운 경우에는 '관계 파악'의 중요성이 더 커지는 것이죠.
요즘 각잡고 제대로 된 칼럼 쓸 시간이 안 되어서, 이렇게 짧게 짧게 메모처럼 자주 올려볼까 합니다.
저는
만점의 생각 비문학편 저자
피램 문학 시리즈 공동 저자
조경민입니다.
감사합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어뎁터로 계속 머리갈구니 6평 시험지 오늘 새로 꺼내서 오랜만에 풀었는데 27분...
-
모든것=(A or Not A) (A or Not A)의 부정은 (Not A and...
-
한국사 팁 2
근우회 근우회 근우회 구눼 그눼 그눼 그네 근혜 > 여성단체 조광조 거꾸로해도...
-
카펠고트가 떠오르네요 에르고타민제제
-
근데 대학 반영비랑 가산점 차이가 진짜 말이 안되긴 하네 1
텔그 시립대 전기전자보다 시립대 철학과가 더 안나오네
-
9평 의미 없긴 한데 1134 언매 미적 물1 화1 순서대로 100 96 47 39...
-
꿈꾸는 자
-
제시문에서 하라는거 다 하고 남으면 약간 배경지식 추가해서 더 적어도 되나요?_?...
-
돌리면 백분위 93이라 뚝 떨어지는 거 열받는데 물2 2등급 블랭크는 수능 때였지...
-
어케찍지?
-
그럼 아빠는 보일러 틀잖아 더워 뒤지겠는데
-
아 방송 마렵다 1
악질 채팅 보내고 싶어서 미치겠어
-
근데 몇일만에 몇등급, 어디간다 이거 성공한사람 있음? 1
오래된 유명한 수기들 말고는 본적없는거같은데
-
드릴이랑 킬캠 풀면서 엔축 50번은 쓴듯
-
수학 기출 마무리 뭐로 할까요?
-
불닭먹었더니
-
영양제가 무엇인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
요새 느끼는점 0
난 합격해도 절대 학교 과 안까야지
-
그렇다기엔 너무 사람이 진지해져버림 이라는 착각을함
-
44-48 나오다가 갑자기 35점으로 처박는데 이게 수능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
이원준 문제은행 <- 이게 진짜 씹간지인듯
-
모든것 = (A or Not A) 부정은 (Not A and A)이고 (Not A...
-
2010년 이후 가울야구에서 2등팀이 3등 팀을 꺾고 코시에 간 적이 없음 삼성팬인...
-
실검2위뭐냐 3
나도저정도급의네임드분탕충이되고싶구나..
-
5년전에 어떤 국어 강사 연계예측하다가 뒤지게 쳐맞았는데 5
자전거도둑이었나?
-
국어 초비상사태 2
이대로 가다간 정말 수능날 3이 뜰 수도 있을 거 같다 실모 실시.
-
막히는 문제 입갤
-
네모네모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음 님들 네모네모 듣지 마셈 수능금지곡임 ㄹㅇ 방금...
-
정석에서 배운 것 같은데 수2 들어가 보니 쓸 데가 없슴뇨
-
왠지 신입생 왔을까 여기 저기 둘러보아도 비어있는 언기도~만 저기 경비원 아저씨 . . .
-
설대/고대나 지방메디컬 지망이면 별 상관 없지 않나 어차피 다 과탐 강제인데
-
나는 왜 음함수미분 공벡 무연근 부등식의영역 등등을 알고 있는가 2
책이 조금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
9모는 96점 받았는데 실모를 풀면 7~80점대가 나와요. 시간이 부족해서 지문을...
-
지원금이 인질로 잡혀있는데 분리변표가 가능한가
-
ㄹㅇ 재수하면서 소원이 국어 100점 한번만 맞아보자였는데 9평때 실패해서 아 약간...
-
심지어 기하던데 기하 응시자 3% x 우리과에 있는 사람이 반수할 확률 x 10월...
-
작년까진 나왔던걸로 아는데 올해는 없는건가요?
-
가서 배그하는데 컴퓨터 위에 시립대 합격증이 붙어있었음 친구 형이 재수끝에 전전컴에...
-
오늘은 반드시 씻어야함 19
한 4일 안 씻은 것 같은데
-
대한민국 한 귀퉁이에 나 없으면 안 돌아가는 일이 몇 개 있다 그거 하나 자부심으로...
-
분리변표낼거였으면 사탐에 가산점도 안줬겠지
-
네모네모 네모네모 Sign(사인) 삐뚤빼뚤해 Like(라잌) 근데 영어에 달린 ㅇ도...
-
글 알림이 떴는데 진짜 까먹음
-
수학적 귀납법 역시 즘명가능한 statement라는 거, 알고 계셨나요?
-
말이되냐
-
현자의돌 실개완 교재 보니까 플라톤의 죽음관과 불교의 죽음관을 비교하면서 플라톤과...
-
ㅆㅅㅌㅊ
-
찬우야이! 5
꼬두메로 가자 오랜만에 갑자기 머리속을 스쳐지나감
요즘 특히 객관적인걸 많이 물어보더니 올 수능에선 사소한 디테일까지 엄청 묻더라구요••
시는 느껴라..메..모...
이거 원툴로 현대시에서 살아남앗습니다
개꿀팁임 ㄹㅇ루 ㅠ
만점의 생각 문학편 나오면 사야겠다
더 이상 수능 안 칠 것 같긴한데
비문학편이 너무 인상깊었어서.. 비록 수능은 못봤지만 ㅋㅋ
분위기(느낌)+사실 일치
시를 넘어서 수능 문학 전체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좋은글이네용
여기에 제 생각을 덧붙이자면, 시의 전반적인 느낌도 자기 멋대로 얻지 말고 상식적인 선, 내신으로 쌓아온 베이스로 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동의, 또 동의합니다. 만점의 생각 문학편이 너무 기대되네요..
구구절절 다 맞는말같아요!
문학은 객관적 사실과 문맥 두개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객관적으로 변별해야하는 수능시험이라
ㄹㅇ 그런거같아요
그래도 문학은 정형에서 크게 안벗어나서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