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공사 [960875] · MS 2020 · 쪽지

2021-01-30 11: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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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남겨보는 시골 소년 대치동 상경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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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본 학원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던게 강의실이 진짜 컸음. 사실 지금 생각에는 그렇게 큰 강의실이 아니었을 텐데, 그동안에 봤던 방들보다 컸으니 그렇게 느꼈던것 같음. 강의실도 컸는데 학생들을 많이 수용하기 위해서인지 책상은 너무 작았음. 그렇게 밀집해서 앉다보니 한번 앉으면 나갈수가 없음. 인강에서 보던 강의실은 3-40명쯤 앉아있었겠거니 생각했는데 일단 그 규모에서 한번더 기가 죽음. 뭐 그런걸로 기가 죽냐 그럴수 있지만 그땐 그랬음.


 그런데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모두 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수업을 들음. 뭐 100%가 다 그랬을리는 없지만 기가 죽어있던 나한테는 그렇게 보임. 이 분위기에서는 억지로라도 집중해서 수업을 들을수밖에 없었음. 한 강의가 3시간씩인데도, 학생들의 집중도가 정말 놀라웠음. 지금 내가 다니는 국내 국제 학회를 보면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학회에서도 3시간짜리 강의는 없으며, 그런 집중도 역시 기대할 수 없음. 3시간 짜리 수업이면 중간에 잠깐 쉬는시간이 있었는데, 화장실을 가려고 나온 순간 긴 줄을 목격함. 아니 저기는 화장실이 아니었던거 같은데 하고 보니 교사 휴게실에 질문을 하려고 교재를 들고 기다리는 친구들이 줄을 서 있음. 1시간 반 강의를 들으면 좀 쉬어야 되는거 아닌가?


 오전 8시부터 저녁까지 수업을 듣는데, 몇일 있다보니 그애들이 그애들임. 나만 그렇게 있는것 다 주세요. 한게 아니라는것을 깨달음. 내가 이정도로 진지하게 노력하는거야 라고 잠시 우쭐했던게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걸 깨달음. 


 대치동 선생님들에게서 "비급"을 잔뜩 받고 돌아가려고 온 나에게 사실은 선생님들 강의 보다도 저렇게 진지한 자세로 공부하는 친구들이 한둘도 아니고 수백명이 있다는 사실이 가장 충격적이었음. 왜냐하면 초, 중, 고에 내가 속해있던 집단에서는 진지한 자세로 공부하는 친구들은 소수였고, 그 소수 안에서의 경쟁이었기에 이정도면 나쁘지 않다라는 생각을 했었음. 그리고 다수의 친구들을 보면서 다소의 안도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음. 대학을 가기위한 경쟁은 "전국"이지만 아직 와닿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렇기에 내가 수능 준비를 하면서 느꼈던 벽은 사실 "노력"보다도 서울에만, 대치동에만 존재하는 어떤 "비급"이 없어서 였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름. 그런데 "비급"의 여부를 떠나서 일단 "진지함", "노력" 부터 안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됨. 


 그리고 이 친구들이 실력이 없어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게 아니었던게,  학원에서 일주일에 한번 모의고사처럼 과목별로 시험을 봤음.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서 1등도 만점이 아니었음. 점수를 알수 있었던 것은 과목별로 상위 20인은 게시판에 점수와 함께 붙여놨기 떄문에.. 뭐 당연한거겠지만 내이름은 보이지 않았음. 나름 그래도 지방에서 하면 한다고 했던 나인데.. 하지만 여기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모습을 보니 어쩌면 당연한거라고 생각이 듬. 그리고 저기에는 절대 못들겠다는 생각이 듬. 어차피 여기에 다음달이면 없을텐데..


 보통 어느 집단이든 어떤 척도로 나눴을때 정규분포를 보여야 하는데, 이곳은 매우매우 왜곡된 집단이란걸 느끼게 됨. 아.. 모의고사를 보면 내앞에 있는 친구들이 전국에 고루 분포하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됨.


 지금보다 좀 더 진지하게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됨. 절대적인 시간 뿐만 아니라 집중도도. 강의 듣는 시간 이외 다른 시간을 복습에 사용하기 시작했음.  중간중간 비는 공강시간이 있었는데, 학원 원장님의 배려로 빈강의실을 이용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복습을 시작함. 학원이 끝나고 독서실에 돌아오면 12시가 넘는 시간이 될때도 많았는데,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복습을 하려고 노력했음. 사실 그게 얼마나 효율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최소한 이 친구들이랑 경쟁이라도 하려면 나도 더 진지한 자세로 수험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것 같음.


 학원이 가장 늦게 끝나는 날은 금요일이었는데, 마지막 수업이 고전문학을 강의하는 선생님이었음. 수업 내내 고함치고 윽박지르면서 수업을 했던 선생님이었는데, 강의시간도 원래 강의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음. 12시 넘어서 끝나는 날도 많음. 수업이 끝나고 학원을 나올때면 학원 건너편으로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그곳에서 타워팰리스가 보였음. 그 건물을 볼때마다 속으로 무슨 다짐들을 했던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는 않음.. 그리고 고시원으로 돌아오면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볼수 있었음. (내가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


당분간은 기가 죽었던 기억밖엔 없음. 학원 다니면서 거기에 있던 학생중에는 누구랑도 얘기해본적이 없음.

그런데 뭐 이왕 올라온거 조금만 더 버티자 가자는 생각이었음.


그런데 이 기가 죽었던 경험이 추후 귀중한 경험으로 바뀌게 됨.


이렇게 첫달이 서서히 지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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