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471에서 중앙대까지의 기록-9
53471에서 중앙대까지의 기록 수기 보러가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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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는 사람마다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필자는 대학을 죄다 떨어진, 그러니까 1월부터 재수를 시작했다. 그 때 엄마는 필자의 한심스런 끈기와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저 멀리 지방의 기숙학원으로 가서 공부할 것을 권유했지만 태어나서 지금까지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던 필자가 그 말을 제대로 들을 리가 없었고, 초딩들도 눈뜨고 못 볼 떼쓰기 끝에 결국 대치동의 한 학원에서 전부터 알던 고등학교 친구(※참고로 영감-Lee다)의 권유로 같은 학원에서 재수를 시작했다.
재수 생활의 하루 패턴은 학교생활 때와 크게 다르지 없었다. 아침 일찍 학원으로 와서 독서실 비슷한 장소에서 공부를 하다가 점심이 되면 대치동 주변에서 밥을 먹고, 다시 돌아와서 공부를 하다가 저녁쯤에 집으로 돌아간다. 뭔가 모르는 게 있으면 학원에 계시던 선생님들한테 질문하고, 문법이나 영어듣기같이 본인의 취약점으로 생각되는 부분이 있으면 선생님에게 신청하여 수업을 들을 수 있다. 평상시의 재수학원과는 많이 다른 느낌의, 좀 더 자율성을 중시하는 분위기였는데, 실제로 학원의 분위기도 굉장히 조용하고 차분했다. 만약 본인이 진득하게 앉아서 공부만 할 수 있는 성격이었다면 굉장히 잘 맞는 재수학원이었을 것이다.
공부 방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자이스토리와 마더텅같은 문제집을 풀고 채점. 틀린 문제는 오답노트에 적고 복습한다. 수특도 나오지 않았을 때라 볼 ebs도 없었다. 영어와 국어는 여전히 실력이 처참해서 단원 하나를 풀 때마다 우수수 틀려나가곤 했다. 고3때까지 보았던 한국사가 2016년부터 필수 절대평가로 빠졌기 때문에 사탐을 새로 하나 정해야 했는데, 그 때 당시에는 같은 역사기도 하고 공부 방법이 한국사랑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 세계사를 생각 중이었다. 적어도 3월 전까지는 굉장히 스무스하게 흘러갔다. 뒤가 없는 재수생활이었기도 했고, 비싼 돈 주고 재수비용까지 대주는 부모님한테 미안한 마음도 있었고, 성적 좀 올려보자는 마음가짐도 있었고, 공부하기에도 괜찮은 환경이었으니,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3월이 되었다. 그 때 학원에서 3평을 보았는데, 성적이 상당히 잘 나왔다. 거의 2년 만에 부모님에게 성적 자랑을 해본 날이기도 했다. 공부를 안 했던 세계사는 5등급이었지만, 수학을 96, 무엇보다도 계속해서 발목을 잡아오던 국어와 영어를 2등급 언저리로 끌어올렸다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부모님도 기뻐했고 필자 본인도 정말 기뻤다. 드디어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아보는 것 같았다.
고3때도 비슷하겠지만 재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3월, 또는 6월이라고 생각한다. 재수 시간은 주변에서 잡아줄 사람이 고3에 비해 부족한 시기이기 때문에 동기 부여가 부족해지고, 이 기간에 해이해지기 정말 쉽다. 초반에 열심히 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일단 동기 부여가 강할 때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싶어하니까. 관건은 이런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것이다. 공부는 동기부여가 관건이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람이 10달 동안 꼬박 공부만 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된다. 99.99%의 사람은 몇 달정도 공부 하다보면 분명히 슬럼프가 올 것이다. 왜하는지 모르겠고, 하기 싫고, 지치고, 그런 마음을 제쳐두고 책을 펴고 펜을 드는 이유는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을 가고 싶은 동기가 그 마음들을 넘어서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지쳐도 된다. 그게 정상이다. 쉬어도 된다. 힐링도 필요하다. 손에서 아예 떼버리진 말자. 회복하는 게 너무 어렵다. 포기하지도 말자. 회복이 아예 불가능하다.
이렇게 열심히 밑밥을 까는 것을 보면 대충 감을 잡았을 텐데, 필자는 여기서 해이해졌다. 그렇게 되면 어떤 식으로 생활이 바뀌나 하면, 서서히 학원에서 조는 시간이 늘어나고, 하루 계획이 다음 날로 미뤄지는 날이 늘고, 문제집 진도가 느려지며, 스마트폰 데이터 사용량이 늘어나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4시쯤에 학원을 나와서 PC방으로 향하고, 강남대성에서 재수하던 친구 몇 명과 술 마시러 가기도 한다.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가 정말 한심하게 느껴지지만 뭐 어떻게 하나, 그 때의 필자는 그랬으니까. '그래서 이새끼 도대체 언제쯤 공부 시작하는거야?'라고 생각하며 수기를 읽어가는 수험생들도 있겠지만, 정말 유감스럽게도 그건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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