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 이 문제의 의도는, [항일 운동 의병의 전개 과정]을 파악하고 있느냐 묻고싶은 겁니다.
(1) 고종의 밀지를 받아 독립 의군부(1912)를 조직한 임병찬 (최익현 제자) (2) 각국 영사관에 국제법상 교전단체 인정을 요구한것은 13도 연합 의군 (4) 남한 대토벌 작전 때문에 부대를 해산한건 1909년 호남의병들 대상 (5) 위정 척사 사상을 가진 유생 -> 을미의병 의병장인 유인석, 을사의병 의병장인 최익현. 우리가 을미의병,을사의병 배울 때, 주로 양반유생들이 대다수이고 평민들도 합세하였다고 배우죠. 을사 때는 평민의병장도 나오긴 하지만 유생들이 많이 참여하였지요.
19번. 이 문제는 [정부의 개화정책 추진 과정을]을 아느냐 묻고있는 겁니다.
자료 해석 -> 고종13년 6월 1일 ( 1863+13= 1876년) 귀국한 수신사 김기수를 불러서 만나다.===> 1차수신사 김기수 (1876) 고종 17년 3월 23일 ( 1863+17=1880년) 김홍집을 수신사로 임명하여 일본에 보내라고 지시했다. ====> 2차수신사 김홍집 (1880) 고종 17년 8월 28일 귀국한 수신사 김홍집을 불러들여 만나다
김홍집은 고종에게 조선책략을 건넸고, 고종은 이것을 전국에 유포시킴 -> 위정척사파 깜놀!!!!!!! -> 영남만인소 (김홍집처벌,미국과 수교 반대 why? 사학한 종교가 들어오면 성리학이 무너져버리니까, 기득권을 뺏기고 싶지 않아! ) -> 비밀리에 조사시찰단 파견 (고종 : 아우 저것들 또 반발하면 귀찮아지니까 암행어사식으로.. ) -> 통리기무아문 설치 -> 청에 영선사 파견 , 별기군 설치, 5군영 -> 2영 등, 개화정책 추진 -> 임오군란 -> 선혜청 민겸호 등 고관 사살 -> 일본 교관 살해 + 공사관 불태움 -> 도시 빈민들과 합세해 궁궐 난입( 그만큼 민비도 싫고 일본도 싫다 이거임) -> 민비 도망가고 벌써 없음... 청에 SOS -> 청군 등장 -> 일본군도 도착 (왜 우리 공사관 안지켜줬냐? 차라리 우리가 지킨다!!! ) -> 제물포 조약 체결 : 내용: 배상금과 일본군 주둔 허용. 사과하러 와라!!
고종 19년 8월 8일 수신사 박영효, 수신부사 김만식 등을 만나다 ----> 3차수신사 : 사과사절단 박영효(1882) 고종 19년 11월 28일 귀국한 수신사 박영효와 수신부사 김만식을 만나다.
12번. 이 문제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변천 과정]을 묻고 있습니다.
(가)는 1919년 9월 제정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제1차 개헌안. (나)는 1940년 제정된 제4차 개헌안입니다. 1919년 여러 군데에서 동시에 수립되었던 임시 정부가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되면서 헌법이 개정되었으며, 이승만이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초기의 외교활동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창조파와 개조파가 대립하여 1923년 국민대표회의를 개최하였지만, 국민대표회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창조파에 속한 인물들이 임시정부를 떠나 침체에 빠졌죠.. 1940년 충칭에 정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헌법을 개정하여 주석제를 채택하였고, 이전의 여러 정당을 해체하고 통합정당으로 한국 독립당을 결성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내내 민주 공화정체를 유지하였구요.
(4) 구미 위원부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초기부터 설치되었으며 대통령인 이승만이 위원장을 맡았지요.
534
1빠에게 달아드리는
※ 문제해설 ※
10번. 이 문제의 의도는, [항일 운동 의병의 전개 과정]을 파악하고 있느냐 묻고싶은 겁니다.
(1) 고종의 밀지를 받아 독립 의군부(1912)를 조직한 임병찬 (최익현 제자)
(2) 각국 영사관에 국제법상 교전단체 인정을 요구한것은 13도 연합 의군
(4) 남한 대토벌 작전 때문에 부대를 해산한건 1909년 호남의병들 대상
(5) 위정 척사 사상을 가진 유생 -> 을미의병 의병장인 유인석, 을사의병 의병장인 최익현.
우리가 을미의병,을사의병 배울 때, 주로 양반유생들이 대다수이고 평민들도 합세하였다고 배우죠. 을사 때는 평민의병장도 나오긴 하지만 유생들이 많이 참여하였지요.
19번. 이 문제는 [정부의 개화정책 추진 과정을]을 아느냐 묻고있는 겁니다.
자료 해석 -> 고종13년 6월 1일 ( 1863+13= 1876년) 귀국한 수신사 김기수를 불러서 만나다.===> 1차수신사 김기수 (1876)
고종 17년 3월 23일 ( 1863+17=1880년) 김홍집을 수신사로 임명하여 일본에 보내라고 지시했다. ====> 2차수신사 김홍집 (1880)
고종 17년 8월 28일 귀국한 수신사 김홍집을 불러들여 만나다
김홍집은 고종에게 조선책략을 건넸고, 고종은 이것을 전국에 유포시킴 -> 위정척사파 깜놀!!!!!!! -> 영남만인소 (김홍집처벌,미국과 수교 반대 why? 사학한 종교가 들어오면 성리학이 무너져버리니까, 기득권을 뺏기고 싶지 않아! ) -> 비밀리에 조사시찰단 파견 (고종 : 아우 저것들 또 반발하면 귀찮아지니까 암행어사식으로.. ) -> 통리기무아문 설치 -> 청에 영선사 파견 , 별기군 설치, 5군영 -> 2영 등, 개화정책 추진 -> 임오군란 -> 선혜청 민겸호 등 고관 사살 -> 일본 교관 살해 + 공사관 불태움 -> 도시 빈민들과 합세해 궁궐 난입( 그만큼 민비도 싫고 일본도 싫다 이거임) -> 민비 도망가고 벌써 없음... 청에 SOS -> 청군 등장 -> 일본군도 도착 (왜 우리 공사관 안지켜줬냐? 차라리 우리가 지킨다!!! ) -> 제물포 조약 체결 : 내용: 배상금과 일본군 주둔 허용. 사과하러 와라!!
고종 19년 8월 8일 수신사 박영효, 수신부사 김만식 등을 만나다 ----> 3차수신사 : 사과사절단 박영효(1882)
고종 19년 11월 28일 귀국한 수신사 박영효와 수신부사 김만식을 만나다.
12번. 이 문제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변천 과정]을 묻고 있습니다.
(가)는 1919년 9월 제정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제1차 개헌안. (나)는 1940년 제정된 제4차 개헌안입니다.
1919년 여러 군데에서 동시에 수립되었던 임시 정부가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되면서 헌법이 개정되었으며, 이승만이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초기의 외교활동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창조파와 개조파가 대립하여 1923년 국민대표회의를 개최하였지만, 국민대표회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창조파에 속한 인물들이 임시정부를 떠나 침체에 빠졌죠.. 1940년 충칭에 정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헌법을 개정하여 주석제를 채택하였고, 이전의 여러 정당을 해체하고 통합정당으로 한국 독립당을 결성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내내 민주 공화정체를 유지하였구요.
(4) 구미 위원부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초기부터 설치되었으며 대통령인 이승만이 위원장을 맡았지요.
534!!
어제 문제 댓글 달아드렸어요 확인 해주세여~
기출이라서 좀 김 빠지네요ㅋㅋ 암튼 534!
9월.수능만 올리고 다시 자작으로 돌아가려구여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