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과학 비문학 총론 2편 - 수능 국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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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과학 비문학 총론 2편 - 수능 국어란 무엇인가
여러분은 SAT라는 시험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SAT는 한국 수능의 원조가 되는 격의 미국 대학 입시시험입니다. 학생이 고등학교 교육을 충실히 이수했는지, 그리고 이 학생이 나중에 대학을 가서 잘 할 수 있을지의 가능성을책정하는 시험입니다(사실 이와 관련해서 전자와 후자간의 치열한 논쟁이 있었긴 했지만 넘어가겠습니다).
한국의 수능은 21세기 창의성과 융합의 시대(어디서 많이 본 문구인데..)에서 기존의 학력고사라는 시험으로는 뛰어난 인재를 선별하기가 어렵다고 판단되어 개발된 시험입니다. 한국 수능의 원류는 미국의 SAT입니다. 대한민국의 수능도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출제범위와 방향성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수능 시험은 초창기의 목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 학생이 과연 나중에 대학을 가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까?를 확인하기 위한 시험입니다.
일단 대학을 가면 두꺼운 전공서적을 읽고 논리적으로 사고하여 공부를 스스로 해야합니다. 따라서 이런 활동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독해력과 논리적 사고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초창기 수능은 국어와 수학, 딱 2 과목만 있었습니다.수능 이전의 학력고사는 3당4락(하루에 3시간 자면서 공부하면 합격하고, 4시간자면서 공부하면 떨어진다)이라고 하여 지겹도록 오래 앉아서 최대한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쑤셔넣어야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딱 봐도 문제가 있어보이죠?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현재의 수능 시험입니다. 지금의 수능 시험은 학력고사와 방향성이 극도로 다릅니다. 즉, 학력고사를 준비하는 방식으로는 수능을 준비할 수없습니다.
누구나 알지만 실감하지 못하는 수능의 사실을 하나 꺼내보겠습니다. 수능 시험에서는 학생들 중 그 누구도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충격적인 소재들이 비문학 지문에 소개됩니다. 학생들이 어떻게 보험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알겠습니까? (2017학년도 수능) 계약이 먼저인지 법조문이 먼저인지 누가 알겠습니까?(2018년 6월 모의평가) 콘크리트를 어떻게 만드는지 왜 나한테 물어요?(2017년 9월모의평가)
즉 이미 알고 있는 내용, 이전에 참고서나 교과서에서 본 소재들은 나오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평생 들어본 적도 없는 단어와 소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풀어야합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지식을 머릿속에 많이 넣었다고 풀 수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수능 국어에서 비문학은 잘 읽고(독해) 잘 생각해서(사고) 풀어야 합니다. 내가 지식이 많다고 해서, 혹시라도 뭐 부모님이 관련 직종이라서 보험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다 하더라도, 비문학은 언제나 보면 새롭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수능 비문학을 대비한답시고 고등학교 3학년 주제에 다양한 책을 읽고 앉아있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눈알을 빨리 굴려서 일일이 모든 정보를 찾아가는 풀이방법도 좀 자제하라는 말입니다. 시험의 방향성과 안 맞거든요.
그렇게 풀라고 우수한 출제진들이 머리 뜯어가면서 지문을 집필한게 아닙니다. 수능이 독해력과 사고력 시험이지, 속독과 눈동자 훈련 시험이 아니라는 겁니다. 학생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비문학을 접근하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독해력과 사고력이 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독해력이 다들 중요하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는데, 독해력이라는게 뭘까요? 저는 이 책에서 독해력을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싶습니다.
“주제를 찾는 능력. 핵심내용을 찾고 효율적으로 읽는 능력”
지금은 당장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나중에 지겹도록 이 이야기를 다양한 예시로 설명할 것입니다.
수능 국어에서 출제되는 비문학의 특징을 몇 개 짚어보겠습니다. 수능 국어에서 문학에는 절대 다수에 제목과 지은이(고전 문학의 경우 지은이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비문학에는 제목이 안 적혀있습니다. 지은이도 없고요. 지은이 없는건 그러려니 하겠는데, 왜 하필 문학처럼 제목을 안 써줬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제목이 지문의 주제이고, 그걸 니들이 알아서 잘 찾아내야 하거든”
라고 출제자들이 은근히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해력이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 한번 다르게 설명해보겠습니다. 먼 미래의 일이지만 고등학생들은 나중에 대학을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존경하는 교수님들은 제 팔뚝보다도 두꺼운 전공서적을 던져주시면서 “너 이거 읽고 다음주까지 레포트 써와”라고 하십니다. 네???
이 두꺼운 책을 대체 어떻게 몇 쪽짜리 레포트로 쓰나 막막합니다. 책일 뒤적거리면서 대충 어려워 보이는 내용이나 용어를 찝고 친구의 우정도 동원해서 조잡하게 글을 써봅니다. 그리고 이걸 본 교수님은 “넌 글도 못 읽니?”라고 구박하십니다.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고 구박만 하시니까 억울합니다.
제가 이런 있을법한 상상의 일화를 가져온 것은 여러분을 고통스럽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수능 국어에서 요구하는 능력은 분명 나중에 대학에서 매우 중요한 능력입니다. ‘독해력’말이지요.
저는 앞서 비문학이 학생들에게 생소한 소재로 무장하고 출제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런 소재들은 출제자들에게도 똑같이 생소하고 어렵습니다. 분명 수능 국어의 출제 위원들은 대학 교수와 선생님들입니다. 보험 설계사나 콘크리트 기술자는 출제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험 지문이나 콘크리트 지문이 나올까요?
사실 따지고 보면 국어국문과 교수님들이 보험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아시겠습니까. 당장 영업하시는 보험 설계사가 더 잘 아시겠죠. 그럼 출제진들은 대체 어떻게 보험 지문을 출제했을까요? 그 분들도 우리처럼 똑같이 두꺼운 책 읽고 요약해서 한쪽짜리로 지문을 압축하신 겁니다.
분명 보험을 깊이 있게 설명한 책은 대단히 두꺼울 것입니다. 보험의 원리, 사례, 역사, 목적, 의의 등등. 어려운 수학 공식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며, 난해한 전문용어도 다양하게 등장할 것입니다. 그걸 출제진들은 읽고서, 엑기스만 뽑고 중요한 것부터 우선 요약하고 찝어내서 지문을 작성하시는 겁니다. 출제진들도 사회인이니까 얼핏 들어본 내용이나 이야기는 있겠지만, 그렇게 전문적인 수준으로 깊이 있게 알고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출제진들은 뛰어난 독해력을 바탕으로 그 두꺼운 내용을 읽고, 제일 중요한 내용들만 뽑아내서 한쪽짜리 지문으로 우리에게 멘붕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수능 비문학의 지문은 정보량이 많다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출제진들이 한번 거르고 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지문마저도 정보량이 많다고 머리 싸메고 문제 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잘못된 방법으로 지문을 읽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태 논문을 두어 편 집필한 경험이 있습니다. 논문을 집필할 때 참고문헌이라고 하여 다른 논문의 내용을 가져다 인용하거나 써먹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깊이있고 튼실한 논문들은 수십 쪽을 우습게 넘깁니다. 거기에는 구체적으로 자신들이 어떤 실험 기법과 도구를 썼다고 세세하게 적혀있습니다. 참고문헌을 찾을 때마다 그 방대한 내용을 일일이 다 읽어야 한다면 논문 집필 과정에서 제일 중요하고 시간 잡아먹는 활동이 참고문헌 찾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사자성어, 주객전도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해서 수많은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참고문헌을 어떻게 찾을까요? 바로 ‘초록(abstract)’을 참고합니다. 초록은 해당 논문의 주제이자 핵심을 요약해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논문 집필자들은 다른 논문들의 초록을 보면서 과연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인지 판별합니다. 초록에는 쓸데없이 세세한 과정과 기록이 없습니다. 딱 자신의 논문의 목표와 주제,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를 짧게 정리해놨습니다. 이렇게 필요한 정보가 효율적으로 축약된 초록은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습니다.
이렇게 유용한 초록을 작성하려면 무슨 능력이 필요할까요? 독해력과 사고력입니다. 논문을 잘 읽고, 효율적이고 정확한 사고력으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는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중요한 정보, 꼭 필요한 정보를 위주로 골라내면 초록을 쉽게 쓸 수 있습니다.
수능 국어는 단언컨대 독해력과 사고력이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과목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저와 같이 공부하면서 이런 사실을 계속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독해와 사고가 수반되지 않고 문제를 풀었다면 그건 수능 국어의 방향성과 어긋나는 풀이입니다. 이 책의 전쟁사 시리즈에는 다양한 인간의 사고 작용을 설명해 놓았습니다. 일부러 전쟁사 칼럼에서는 수능 국어에서 써볼만한 사고, 인지 과정을 실제 사건과 연관시켜 설명하였습니다.
독해력과 사고력. 생소하고 뚜렷이 표현하기 어려운 용어이긴 하나 우리는 일상에서 이미 이러한 것들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 이 능력들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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